2014.12. 7.해날. 흐림

조회 수 734 추천 수 0 2014.12.26 02:27:50


학부모의 안부를 듣습니다.

일곱 살에 만난 아이가 고교생이 되는 동안 이어온 벗네입니다.

시를 오래 써온 그는 등단을 거치진 않았지만 이미 시인입니다.

“올해도 응모했어요.”

신춘문예의 계절이군요.

그렇게 하고 또 하고,

또 벗들에게 그 도전을 말하는 용기는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방증(傍證)일 것.

날마다 하는 일을 어찌 당한답니까.

당선에 이르기를.


한동안 또 게을러있던 아침수행, 그러니까 해건지기를 시작하는 아침이었습니다.

생일을 지나며 다시 태어나기로.

그건 겨울에 이곳에 이를 아이들을 위한, 또 어른들을 위한 기도이고,

그리고 자신을 위한 훈련의 시작.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 하기도.

한울기공과 국선도 기본동작과 티벳 대배 백배, 그리고 명상으로.

기도가 깊으면 땅을 울렁이게 할 수도 있으리,

기도가 길면 숲을 흔들리게 할 수도 있으리, 그런 대단한 무엇인 양 생각도 해보면서.

하기야 세상일에 끝이 어딨고

기도의 깊이가, 기도의 길이가, 어찌 가늠이 있을 것인지요.


지난 11월 한 달의 안나푸르나행에 동행했던 책 가운데 하나를 이제야 눈앞에서 치웁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존 크라카우어).

책 속에서 재인용한 몇 곳을 옮김.


해가 질 때는 외로움도 역시 찾아들었다. 이제 회의에 빠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으나 그럴 때면 흡사 내 전 생애가 내 뒤에 펼쳐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다. 나는 우리가 일단 그 산에 오르기만 하면 눈앞에 가로놓인 과제에 깊이 몰입하는 바람에 그런 기분은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따금, 결국 내가 찾던 게 뒤에 남겨놓고 온 어떤 것이라는 걸 깨닫기 위해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깃들곤 했다.

- 토마스 F. 혼베인, <에레레스트: 서쪽 능선> 가운데서


등산의 매력의 상당 부분은 산에서는 인간 관계가 단순화되고, 우정이 매끄러운 상호 작용으로 축소되고(전쟁터에서처럼), 관계 그 자체가 다른 것(산이나 도전 자체)으로 바뀌는 데 있다. 모험의 신비, 견디기 힘들 정도로 혹독한 상황,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방랑벽-각종의 편의시설의 안락함을 바탕으로 해서 건설된 우리 문화에 대한 해독제로서 꼭 필요한 것들-의 배후에는 속절 없이 늙어가는 것과 타인들의 연약함, 인간 상호간의 책임, 온갖 종류의 취약함, 한없이 느리게 그리고 따분하게 흘러가는 인생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 특유의 마음 자세가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뛰어난) 산악인들도...... 때로 깊이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고귀하게 산화한 옛 동지들을 회상할 때만 일어난다. 불, 존 할린, 보네티, 보닝턴, 해스턴의 글들에서는 놀라우리만큼 비슷한 톤의 냉정함이 엿보인다. 탁월한 능력에서 오는 싸늘함과 냉정함. 아마도 이것은 극단적인 등산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일이 어긋난 경우에는 최후까지 힘겨운 고투가 계속될 것이다. 만일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생존할 수 있다, 자연이 응징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한>이라는 해스턴의 말로 대변되는 치열하고 격렬한 등산의 본질을.

- 데이비드 로버츠, ‘’가장 뛰어난 주역들‘, <의심의 순간들>에서


나는 요약해서 간추린 내용, 경과하는 시간을 통한 모든 것, 자신이 이야기하는 걸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는 호언 장담을 불신한다.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주 고요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 평온한 가운데 떠오른 감정을 갖고서 글을 쓴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보거나 거짓말쟁이이다. 이해한다는 건 전율하는 것이다. 회상한다는 건 과거의 그 순간으로 다시 들어가 갈갈이 찢기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 앞에서 겸허하게 한쪽 무릎을 꿇는 대가를 존경한다.

- 해런드 브로드키, <속임수들>


그리고 접어두고 다시 읽은 190-191p.

정상 정복보다 돌아섰던 걸음에서 더 가슴이 울렁거렸던.

1995년 10월 16일, 그는 주문 제작한 자전거에 100킬로그램이 넘는 장비들을 싣고 스웨덴의 해수면 높이의 출발 지점에서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셰르파의 도움도 산소 탱크의 도움도 없이 순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왕복 여행할 의도로 스톡홀름을 떠났다. 그건 지나치게 야심적인 목표라 할 만한 것이었지만 크로프는 그런 일을 해내기에 충분한 자격을 구비한 청년이었다. 그는 과거에 여섯 차례에 걸쳐 히말라야의 여러 봉우리들을 오른 바 있고 브로드 봉과 초유, K2는 혼자서 올랐다.

카트만두까지 13,000킬로미터를 달려오는 동안 루마니아에서는 학생들이 그의 물건들을 훔쳤고, 파키스탄에서는 군중들이 일제히 그를 공격했으며, 이란에서는 성난 오토바이 운전자가 야구방망이로 그의 머리를 후려갈겼다(다행히도 그는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4월초에 그는 그의 여정을 영상에 담아온 촬영 요원 한 사람을 대동하고 무사히 에베레스트 발치께에 도착했으며, 오자마자 곧바로 고도 적응을 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밑자락에 올랐다. 그리고 수요일인 5월 1일에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베이스 캠프를 떠났다.

크로프는 목요일 오후에 사우스 콜 7.920미터 지점에 설치해 놓은 자신의 마지막 캠프에 이르렀으며 이튿날 자정 직후에 정상을 향해 떠났다.

... 허벅지 깊이로 쌓인 눈이 크로프의 전진을 방해했지만 눈밭을 헤치고 계속 저돌적으로 밀어붙인 끝에 오후 두시경에는 사우스 서미트 바로 아래인 8,748미터 지점에 이르렀다. 이제 60분만 더 오르면 정상인데 그는 더 올라갈 경우에는 너무 지쳐 안전하게 하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아깝게도 거기서 돌아서기로 결정했다.

5월 6일, 크로프가 제2캠프 곁을 지나 산 아래로 터덜거리고 내려갈 때 홀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 정도로 정상 가까이 접근한 상태에서 돌아선다는 건...... 크로프같이 젊은 사람으로서는 참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대단히 현명한 판단을 내린 거예요. 난 감명을 받았어요. 그 사람이 계속 더 올라가 정상을 밟았다 해도 이보다 더 감동스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요, 정말 정상을 정복했다 해도 그보다 더 감동스럽지 않았을 듯.


가장 높은 꿈의 대가로 열둘의 목숨을 잃은 1996년 5월의 열정과 비탄의 드라마 뒤

그해 10월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에베레스트에 관한 한 토론회에 인터넷으로 접수된

세르파 족 고아의 편지에는 아주 마음이 아렸더랬지요.

짐꾼으로 부모를 잃고 형 셋마저 여러 가지 이유로 잃은 뒤

누이와 함께 유럽과 미국에 양자로 갔던 그는

고국에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고,

성역을 침입하는 그런 신성 모독적인 행위에는

결코 가담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했습니다.(367-368p)


내년 11월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이를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3876 2014.12.22.달날. 아침 눈발 선 하늘 옥영경 2015-01-03 816
3875 2014.12.21.해날. 맑으나 가끔 눈 날리고 옥영경 2015-01-03 649
3874 2014.12.20.흙날. 맑음 옥영경 2014-12-31 645
3873 2014.12.19.쇠날. 밤 눈 옥영경 2014-12-31 783
3872 2014.12.1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4-12-31 657
3871 2014.12.17.물날. 오후 눈 옥영경 2014-12-31 656
3870 2014.12.16.불날. 오후 눈 날리다 옥영경 2014-12-31 755
3869 2014.12.15.달날. 뿌연하늘, 그래도 푹한 날, 밤 눈 옥영경 2014-12-31 855
3868 2014.12.14.해날. 흐림 옥영경 2014-12-29 725
3867 2014.12.13.흙날. 밤새 눈 내리고 멈춘 아침 옥영경 2014-12-29 770
3866 2014.12.12.쇠날. 맑다가 저녁부터 눈 옥영경 2014-12-27 786
3865 2014.12.11.나무날. 흐림 옥영경 2014-12-27 669
3864 2014.12.10.물날. 가벼운 비 지나는 옥영경 2014-12-27 738
3863 2014.12. 9.불날. 맑음 옥영경 2014-12-27 999
3862 2014.12. 8.달날. 아침 눈 옥영경 2014-12-26 741
» 2014.12. 7.해날. 흐림 옥영경 2014-12-26 734
3860 2014.12. 6.흙날. 눈 옥영경 2014-12-25 740
3859 2014.12. 5.쇠날. 구름 옥영경 2014-12-25 782
3858 2014.12. 4.나무날. 다시 눈발 옥영경 2014-12-18 652
3857 2014.12. 3.물날. 대설주의보 옥영경 2014-12-18 79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