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 8.달날. 아침 눈

조회 수 741 추천 수 0 2014.12.26 02:30:27


아침에 잠깐 은행 관련 일을 끝내면 비로소 오늘은 물꼬일지도 쓰고

이제 교무실 일들이며 좀 챙길 수 있겠구나,

보낼 원고 작업도 좀 하고...

그렇게 달날 아침을 맞았습니다.

이번 주는 지난 11월 네팔로 떠나기 전 예비상담을 해두었던 건을 이어갈 준비도 해야 하고

다른 바깥수업이야 이번 학년도에 더는 없으나

다례모임이며 수행모임이며 일상적인 흐름도 챙겨야 하고

비로소 12월을 여는 아침이더란 말이지요.

한동안 쉬었던 해건지기를 다시 시작한 이틀째.

티벳 대배도 백배.

시작이 좋습니다.

어딜 방문해야 하는 일이 있어 대해리 교무실에서 아침을 열 수는 없는 처지였으나

9시 책상 앞.


랩탑을 켜고 아이폰을 연결하여 인터넷작업도 가능하도록 준비.

잠깐만 하는 은행일이면 됩니다.

어, 그런데, 인터넷은 되는데 농협사이트만 열리지 않습니다.

몇 번의 여러 시도들,

그리고 특정 사이트만 되지 않을 때 하는 몇 가지 해결법을 찾아보지요.

“어머니, 네이버 뒀다 뭐해요. 지식인에 물어보셔요.”

언젠가 아들이 일러준 대로, 뭐 이가 없으면 잇몸 되는 거지요,

자신의 일이 되면 저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 결국 자기가 하게 되는 거지요,

절대적으로 하지 않는, 못하는 컴퓨터 일이라지만 해야지요,

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안내글을 찾아 떠듬거리는 말처럼 독수리타법처럼

하나하나 찾아가며 해보는데,

역시 안 됩니다.


다음은 농협으로 전화, 그곳에서 안내를 받아 몇 가지 확인들,

시간은 흐르고,

그러나 역시 이상 없음.

농협뱅킹이 얼마 전에도 보안이 뚫렸다지, 아주 취약하다지, 틀림없이 농협문제일 거야,

그런데 아니라는 말이지요.

아이폰 쪽으로 알아보라 하기 통신사를 연결,

전체적으로 인터넷이 안 되면 모를까 특정 사이트 문제라면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

다음은 랩탑 회사인 삼성으로 전화를 겁니다.

그곳에서 원격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하지요.

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안됨.

다시.

안됨.

점심시간도 지나고 세 시에 이릅니다.


랩탑을 들고 농협으로 가 창구에서 직원과 함께 시도.

그런데, 거기 와이파이 구역에서는 되더란 말이지요.

그러면 아이폰의 문제.

농협 중앙시스템 쪽과 창구직원이 아이폰을 들고

왜 국민은행은 같은 기기에서 되고 있는데 자신들 것만 되지 않는가,

이 고객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이 일에 매달려있는데 해결을 해줘야 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시도들이 오고가고.

농협뱅킹이 얼마 전에도 보안이 뚫렸다지, 아주 취약하다지,

그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혹시 아이폰을 껐다 켜보기는 하셨어요?”

어, 그런 거 안 해봤는데,

“아니요...”

흐흐흐, 꾸욱 누르고 껐다가 다시 꾸욱 누르고 켰지요.

됐을까요?

말 안 해주고 싶습니다.


거꾸로 짚어보자,

너무나 당연하게 농협의 문제, 선험적으로 걔가 문제 있는 애야, 그렇게 시작한,

그 단순한 끄고 켜기만 해봐도 되는 일에 하루 종일을 보냈더랍니다.

은행 창구는 닫을 때가 되었더군요.

하하하, 그랬습니다.

하하하, 바보구나 하고 웃고, 일이 해결돼서 기뻐 웃고,

그래도 넷적인 일을 뭔가 해결하려 든 경험을 한 자신이 가상해서 웃고,

나중에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그리 하면 되겠구나 알게 돼서 웃고.


그래서 그만 기운이 온통 다 빠져 일 쳐다보기도 싫어지고

하여 가벼운 책 한 권.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옮긴이의 글은 <안나 까레리나>의 첫 구절을 인용하고 있더군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바바라 오코너/ 다산책방/2008)

‘내가 개를 훔치기로 결심한 날은, 내 가장 친한 친구 루앤 고드프리가 내가 자동차에서 산다는 걸 알아챈 바로 그날이었다.’

시작이 끌렸지요.

하루아침에 아빠가 사라지고, 집세가 없어 길거리로 쫓겨나고,

당연하게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망가졌을 때 절망감, 수치심, 슬픔, 분노...

‘땅이 갈라져서 날 집어삼켰으면,

내가 한 번 손을 흔들기만 해도 이 찌그러진 똥차가 지구상에서 즉각 사라져버린다면

아니, 그것보다도 아빠가 돌아와 모든 것을 예전처럼 돌려놓는다면’(11p)

그러나...


88p

또 다른 차가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려대며 우리 옆을 거칠게 지나갈 때도, 엄마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엄마, 아무래도 도로에서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내가 걱정스레 말했다.

“아니, 아무래도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나가야 할 것 같다.”

엄마의 목소리에서 절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엄마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코를 닦았다.

“아무래도 내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것 같아. 펑! 이렇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치?”

세탁소에서 짤린 엄마,

그런데 기다리는 건 또 잠시 들어가 살던 빈집 앞의 ‘여기는 사유지, 냉큼 나가시오! 팻말, ....


부랑자 무키 아저씨의 신조가 작가가 전하려는 말일 테지요.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깃보다 더 중요한 법이라는 거다.’(200p)

‘때로는 말이야,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라고’(203p)


창밖을 가득 채운 까만 밤을 구경하면서 밤공기를 깊이깊이 들이마셨다. 좋은 냄새가 났다. 인동초와 갓 손질한 잔디처럼 싱그러운 향내였다.

그 냄새는, 조금도 고약(*무키아저씨 신조)하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만큼이나 상쾌하고도 풋풋했다. 살면서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런 향기였다.


그렇게 책은 끝이 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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