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 9.불날. 맑음

조회 수 999 추천 수 0 2014.12.27 00:49:57


마늘밭을 이제야 고르고 마늘을 놓았습니다.


달마다 한 차례 서울에서 진행하는 물꼬의 인문학공부모임 ‘섬모임’에서는

한동안 주제가 ‘자본주의’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를 빌려드립니다>(원제: 아웃소싱된 자신 The Outsourced Self/엘리 러셀 혹실드/이매진)

자본의 전략으로 시작된 아웃소싱이 삶을 지배하는,

하여 우리 삶은 갈수록 적막해지는 슬픔과 쓸쓸함의 기록.

항공기 여승무원들을 대상으로 감정이 상품화되는 현실을 폭로했던

혹실드의 1983년 <감정노동>은 꼭 30년 만에

여성의 감정 노동은 물론 남녀노소 모두의 희로애락을 상품으로 만든

자본주의의 가공할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는 미국에서 인도까지, 시간적으로는 출생부터 죽음까지 삶의 전 과정을 포괄한.

출생과 장례를 집안에서 관장했던 우리의 삶이

그 모든 것을 상품으로 내준 역사 역시 불과 몇 십 년의 시간.

이제 연인조차 데이트를 주선하고 연애기술을 가르쳐주는 러브 코치의 도움으로 만나고,

웨딩플래너를 고용해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치료사의 상담을 받으며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멀리 인도의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고,

베이비 플래너와 파티 플래너, 필리핀 유모를 고용해 아이를 키우고,

고민이 있거나 외로울 때는 ‘임대친구’를 부르고,

노인 돌보미와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노년을 지낸 뒤,

상조회사의 장례서비스를 받으며 죽음으로 갑니다.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을 시장에 의뢰하고,

사랑과 우정, 슬픔과 추억까지도 타인에게 외주를 주면서 살다가 죽는 거지요.

‘돈으로 임대 친구를 사지만 않았을 뿐, 나 역시 혹실드가 만난 사람들처럼 가족이나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하기보다는 자주 들르는 찻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상담사를 찾아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묻고 따지거나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고, 버거우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관계가 편했다. 그 관계의 부질없음에 쓸쓸해하면서도 행여 돈이 없어서 그런 관계를 살 ’자유’조차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지금의 나였다.’

한 소설가의 고백이 어찌 그만의 고백일지.

너무 오랫동안 사람을 살 자유를 잃고

자신을 팔 자유만을 갖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살아왔음이,

타인들에게 내 몸과 마음을 맡기면서도 그들 전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살아왔음이

어찌 그의 일이기만 하겠는가 말입니다.

혹실드는 말합니다,

원톨로지스트,wantologist’를 찾아가 네가 뭘 원하는지 묻거나 아니면 잃어버린 연대를 회복하라고. 시장이냐 사람이냐, 결국 그것이 문제라고..

말해 무엇합니까, 사람임을.

연대만이 살길이다,가 어찌 노동가요의 외침이기만 하겠는지.


문학에 바친 열정들이 신춘문예로 모이는 시절.

불현듯 후배 하나 생각났습니다,

엊그제 벗이 응모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꼬리에.

오래 잊고 있었던 이름.

세상이 좋으니 웬만한 사람 찾는 일도 수월한.

더구나 이름이 좀 특이하다면 더욱.

스물 언저리 여행지였던 목포 유달산에서 만났지요, 아마.

그와 그의 친구는 재수를 시작하기 전 여행을 하며

친구의 형이 교사로 있던 안좌도로 가려던 길이었고,

산을 같이 올랐던 연으로 그렇게 섬을 같이 들어갔던.

그리고 몇 해를 소식 주고받았지 싶은.

그즈음 시를 쓴다고도 들었던 듯.

아주 가끔 어쩌다 보는 신춘문예 심사평에서

최종심에 오른 그의 이름자를 본 적이 두어 차례 있기도.

그예 작년에 당선이 됐더랬습니다.

당선작 외 4편을 응모했는데, ‘그간의 적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어 당선작으로 합의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을 구조(構造)하고 있는 안과 밖의 경계에 대해 사유와 감각을 적절하게 가로지르며 생의 경험이 곧 시의 경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다른 무엇보다도 신뢰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시는 시여야 한다는 기원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조차 모른다면 시는 언제 찾아올 것인가? 당선자의 대성을 기대해본다.’

그럴 겝니다, 생의 경험이 곧 시의 경험일지니.

그는 문학동네 언저리에서 일하고 놀고 쓰고 있었습니다.

스물의 그를 기억하는데 우리들의 나이차는 겨우 두 살,

그 사이 20년 하고도 다시 5년,

세월 그리 무섭게 흘렀습니다.

‘누나가 나를 시의 길로 이끌어줬다는 거 아는지 몰라~~

소식 접하고 나니 오래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유달산에서, 안좌도에서, 청산학원에서, 오지리에서, 그리고 문득 서울 어딘가에서....

또다시 신념을 좇아 맨발로 논두렁을 밟고 물꼬를 내고,,,

가끔 방송에서도 봤어~~

누나 시집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정말 반가운 이름,,,

이제 가끔이래도 소식 띄울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누나, 정말 반가워...

그리고 잊지 않아 줘서 고마워,,,’


고맙지요, 누군가가 나를 통해 문단에 이르렀다니,

‘쉬잇! 누가 들을라...’

그리 답장을 보냈습니다.

‘시집이라니!

정말 그런 게 있었구나.

시를 사준다는 말에 감격해서 앞뒤 없이 덜컥 그런 짓을 했던.

그렇게 생겼던 목돈으로 아이 할머니 호박목걸이를 사드렸더랬다.

그거 하나 잘한 일이고,

절대 시집냈다는 말 안하고 사는구나.

원고료에 눈이 멀어 가벼운 시집을 엮고 지울 수도 없던.’

언젠가 그런 날 오겄지요, 시집 한 권 냈노라 말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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