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3

눈 눈입니다, 이 밤, 산마을이 묻히겠습니다, 묻혔습니다.


오후에는 눈이 온다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침부터, 해건지기를 하며 열어놓은 창으로 눈이 한 점씩 흩날렸습니다.

아아아, 오늘 날 받았는데, 지붕 고치기로 하였는데...

지난 초하루 김장하던 날

무섭게 몰아쳤던 바람이 흙집 해우소 지붕을 일부 훌러덩 벗겼지요.

천장마저 날려갈까, 눈에 주저앉을까,

흙벽에 스며 젖어든 물이 이제 아주 흘러내리고 있어 그예 벽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다시 눈 몰려온다는데 더는 늦출 수 없는 일이었기

이웃마을(이래도 40여 분 달려가야 하는) 대식샘께 SOS를 쳤던 바.

농촌 관련 강의 하나 읍내에서 종일 있는 날인데,

오전만 갔다가 오후에는 와서 일을 하자 했으나

오후 많은 눈이 몰아친다 하였으니 마음 바빠 아침부터 하기로 했던 것.

대식샘은 선약을 깨면서까지 달려와 주었습니다.

아침 밥상부터 차렸지요.


본관 건물에 뒤란으로 덧대 지은 흙집은,

그 지붕을 가자면

본관 두 동의 건물을 이어 현관으로 쓰고 있는 지붕 쪽으로 사다리를 통해 먼저 올라가고

거기서 다시 비스듬히 놓인 컨테이너를 아슬아슬하게 밟으며 옥상으로 폴짝 뛰어올라야 합니다.

그런 다음 반대편 끝으로 가면 흙집 지붕이 이어지는 거지요.

수평으로 이어진 건 아니고 옥상 가장자리 올라온 만큼의 차이 아래로 툭.


그런데, 훌러덩 넘어간 양철지붕은 옥상 벽 틈바구니에 꽉 끼여

그걸 빼내기가 또 쉽잖겠습니다.

“옥샘, 주전자에 물 좀 끓여주세요.”

물을 올려놓았는데, 그 사이 판단을 또 달리했지요.

지붕이음새를 일일이 풀어 하나씩 빼내기로 하였습니다.

경사진 지붕은,

더러 꼭대기 응달진 모서리를 쓸었으나 잔설이 녹아 흘러 물기를 만들고 있었지요.

그걸 마른 걸레로 닦아가며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어

조심하느라고 하지만 미끌, 한 번씩 놀라며 다시 일을 하고...

바람 거칠고 허공은 휑해서 우린 금세 콧물을 훌쩍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이는 들판 한 가운데 선.

필요한 것을 챙긴다고 챙겼어도 상황이 꼭 그 생각대로 따라주는 것은 아니어

사다리도 몇 차례나 오르내리고...


여기 살면 하늘 고마운 줄 안다니까!”

한두 점씩 날리던 눈 사라지고

거칠던 바람도 숨이 죽고.

“바람 불더만!”

“더 거칠 건데 약하게 불어준 거지.”

바람을 잡고 있느라 하늘님은 힘이 드셨을 겝니다요, 하하.

들춰져서 노출되어 있던 지붕 뼈대 사이사이의 눈을 쓸어내고,

젖었으나 보온재를 다시 덮고

찢어진 방수포는 비닐로 대신하고

떼어냈던 양철지붕 열댓 장을 모두 풀어 다시 자리를 잡아주고...

그래도 목공작업을 해오기도 했던 터라 웬만한 재료들이 다 있는 덕에

굳이 재료 사러 나가진 않아도 되었던.

그것만 해도 일을 얼마나 더는가 말입니다.


와, 해 떴다!”

세상에!

하늘이 어찌 이럴 수가 있답니까.

이러니 물꼬 사는 일을 기적이라 않겠는지요.

추워서 불을 피워야 하는 건 아닐까, 손이 곱아 피스를 박을 수는 있을까,

가마솥방을 드나들며 난로에서 몸을 데워 사다리를 오르내려야 하는 건 아닌가 싶더니...

오후에 내린다던 눈도 해질 때까지 참아주었고,

우리는 무사히, 가뿐이 일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왔더랍니다.


“사람 있을 때 하나 더 해야 하는데...”

지난 초하루 김장하던 날 회오리바람이 흙집 해우소 지붕만 할퀸 게 아니었지요.

게시판도 넘어뜨리고 살구나무아래 긴의자도 넘어뜨리고.

쓰러진 나무로 된 게시판을 이제야 세웠습니다.

대식샘이 땅을 파서 다리를 아주 묻었지요.

지난번에도 흙집 걱정거리를 목연샘과 함께 날려주시더니

또 이렇게 계자 앞둔 걱정을 해결해주셨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럴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누가 이 모진 날 이리 나서 줄 수 있을 것인가,

고맙습니다!

대식샘 농사일에 우리도 손 보탤 수 있어얄 텐데요...

그나저나 미끄러운 경사진 지붕에서 다리를 버티며 한 작업이라, 게다 날도 모질어

몸살들은 아니 할까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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