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리 겨울밤 뒷동산은


양철지붕에 자리를 폈던 눈들이 일제히 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두둑 말을 타고 달려온 것들이 많아

그 얼굴을 다 알아채기가 어렵다

집을 나갔던 고양이가 지나고 까치가 쫓기고

갑자기 나타난 빛 때문에 허둥대는 고라니의 눈동자

자동차불빛에 쫓겨 실렁거리며 바쁘던 너구리의 엉덩이

요양원으로 가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던 정씨 할머니의 허물어지는 흙집

다리를 절며 밀고 다니던 권씨 할 머니의 칠 바랜 유모차

살았을 때 상속할 것 아니라던 이씨 할아버지의 남겨진 젓가락

듬성듬성 이가 빠진 겨울산으로 가던 눈길이

마을 뒤란 잎을 다 털어낸 낙엽송 동산에 잡혔다,

세상 바람이 그곳에서 시작된다는 걸 깊은 겨울밤이면 알려주곤 하던,

밤이면 서로를 끌어안아서 한 덩어리로 보이던 동산이

성긴 나무들로 채워졌던 것임을 그제야 안다

하늘에는 부쩍 많아진 까마귀 떼가

다섯 다섯 셋 흩어졌다가

일곱 넷 둘 둘로 바꾸었다가

엉겨 붙어 몇인가로 휘돌았다가

간다, 먼 곳으로 간다

밤이면 그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낮에 몇이었 건 지나간 시간들이 몇이었 건

한 덩어리의 산처럼 서로를 끌어안을 것이다

다음을 살기 위해 어둠 속에서 존재들은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운 모든 것들은

어둠 속에 껴안아 덩어리가 되는 것들과 한 짝이다



이른 아침 부음을 받습니다.

병원으로 가시고 오래지 않아 며칠 만에 버리신 세상입니다,

어르신들이 흔히 바라는 것처럼.

자식들 두루 보고 그들이 지켜보는 속에 새벽 떠나셨다지요.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은 때에

자신의 생활을 놓고 자식들을 대표해 어머니를 오랫동안 보살핀

당신의 따님께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냅니다.


한 사람이 건너간 이생의 강에서 들려오는, 뱃전에 부서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유자차를 만든 하루였습니다.

선영샘이 진즉에 보내주었으나 여태 손댈 짬을 내지 못했던.

겨울이기 다행인.

굵은 소금을 뿌려 이물질이며 씻어내고

물을 끓인 뒤 불을 끄고 유자를 굴렸습니다.

꺼내어 오렌지 껍질을 깔 때처럼 칼집을 넣으니

속과 겉이 쉬 분리가 되었지요.

껍질은 그것대로 채 썰고, 속껍질은 그것대로 툭툭 썰어 씨를 빼고.

껍질은 유기농설탕(꿀이며 더 좋겠지요)과 1:0.8 정도로 섞고,

속은 속대로 이 역시 같은 비율로 섞었습니다.

껍질만으로 할 때는 시럽을 넣으면 좋을 테고,

속은 잼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만

우린 아직 사과잼 복숭아잼 넉넉하므로 모두 유자청을 만들기로.

양이 많아 내일 오전에 잠시 더 하기로.

그런데, 그만 검지에 물집이 잡힌.

혼자 다 해보기는 또 처음이어.

그렇더라도 그것이 일이라고 물집까지 잡히나 싶은 약간의 낯 붉힘...


저녁이 앉기 전엔 달골을 돌아보러 다녀왔습니다.

문은 잘 닫혔나, 이상이 생긴 곳은 없나, 실내온도는 어떠한가, ...

그리고 지하수 펌프기에 백열등도 달았지요, 얼어서 터지는 일이 없도록.

거기 타이머를 같이 달아 낮에는 켜지지 않도록 해두는데

그 일을 여태 류옥하다가 해왔더란 말이지요.

“어떻게 하는 거지?”

아이가 하는 일이거니, 하여 내 일이 아니거니 하다

미처 물어보지 못하고 겨울이 깊어버려,

달골에 올라가서야 생각한 일이라 물어볼 수도 없어,

사실 그게 대단히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 전혀 생각하려 들지 않다가

급하게 내 일이 되니 결국 정말 아무것도 아닌, 무슨 수학적 머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더라는.

그렇게 단도리를 하고 왔더랍니다.


겨울 계자에 일찌감치 샘들 자리가 차더니

새끼일꾼들 자리도 넘쳐 엊그제 마감 한다 공지하고,

그런데 아이들 자리는 더딘...

이번 겨울은 더도 덜도 말고 서른만 하면 좋겠다 합니다,

어른들 스물과 더하여 쉰 정도면 번잡하진 않고 썰렁하지는 않을 규모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3882 2014 겨울 청계 닫는 날, 2014.12.28.해날. 흐려지는 하늘 옥영경 2015-01-05 712
3881 2014 겨울 청계 여는 날, 2014.12.27.흙날. 맑음 옥영경 2015-01-04 741
3880 2014.12.26.쇠날. 맑음 옥영경 2015-01-04 657
3879 2014.12.2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5-01-04 667
3878 2014.12.24.물날. 흐림 옥영경 2015-01-04 645
3877 2014.12.23.불날. 맑음 옥영경 2015-01-04 666
3876 2014.12.22.달날. 아침 눈발 선 하늘 옥영경 2015-01-03 817
3875 2014.12.21.해날. 맑으나 가끔 눈 날리고 옥영경 2015-01-03 650
3874 2014.12.20.흙날. 맑음 옥영경 2014-12-31 646
3873 2014.12.19.쇠날. 밤 눈 옥영경 2014-12-31 784
3872 2014.12.1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4-12-31 660
3871 2014.12.17.물날. 오후 눈 옥영경 2014-12-31 659
3870 2014.12.16.불날. 오후 눈 날리다 옥영경 2014-12-31 756
3869 2014.12.15.달날. 뿌연하늘, 그래도 푹한 날, 밤 눈 옥영경 2014-12-31 855
3868 2014.12.14.해날. 흐림 옥영경 2014-12-29 726
» 2014.12.13.흙날. 밤새 눈 내리고 멈춘 아침 옥영경 2014-12-29 770
3866 2014.12.12.쇠날. 맑다가 저녁부터 눈 옥영경 2014-12-27 786
3865 2014.12.11.나무날. 흐림 옥영경 2014-12-27 669
3864 2014.12.10.물날. 가벼운 비 지나는 옥영경 2014-12-27 738
3863 2014.12. 9.불날. 맑음 옥영경 2014-12-27 100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