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4.해날. 흐림

조회 수 729 추천 수 0 2014.12.29 02:53:57


해건지기.

대배를 할 땐 어제 세상 버린 한 어르신 마음 편히 가시라는 간절함으로.


어젯밤에 만들기 시작한 유자차 일을 이어가는 아침,

끓는 물에 소독한 병들에 담기.

여러 인사할 곳들로 나누기.

날씨 때문이건 이런저런 사정으로 산마을로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가

읍내에서 가끔 신세를 지는 댁에도 넣어주고,

손이 모자란 줄 어찌 아시고 한 번씩 김치며 무짠지며 나눠주시는 어른댁에도 드리고.

나간 걸음에 도서관에서 빌려왔던 책들도 반납하고.

소사아저씨는 학교 뒤란 언덕 쓰러진 나무들을 연일 자르고 옮기고.


저녁에야 움직입니다, 부음을 받아놓고 미끄러운 길을 떠나지 못하다.

몇 선배며 네팔에 동행했던 산꾼들이 함께 모이기도. 후속 모임을 못해왔던 터에.

떠나는 이들은 그렇게 산 사람들을 불러 모아 주지요.

빈소를 지킵니다.

여기는 전주의 한 장례식장.



숨바꼭질하는 엄마


숨바꼭질하던 엄마가

부추밭을 매는 등 뒤로 호미를 들고 왔네

술래를 기다리다 지친 엄마는

아궁이 불 때는 곁에 와 나오는 불을 부지깽이로 밀어 넣네

어려 나뭇단 이러 다니던 엄마는


어려 다섯이나 되는 동생이 있었던 엄마는

빨래 가고 밭에 가고 산에 가서

마을 공터에서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던 엄마는


왁, 하고 소리치며

기다리다 기다리다 자주 그리 나와서

책 보는 곁에 와서 행과 행 사이를 깨금발로 걷다가

장독대를 닦을 때면 행주를 뺏다가

개집 앞 물그릇에서 해찰하며 놀았네, 숨는 걸 잊고


울 엄마 오늘은 어디 숨었나

장롱 안에 있지

이불 거풍하는데 나왔다가는

고솜한 볕 따라 장롱에 다시 들어가더니

많이 먹어라, 밥심이 최고다

언제 또 나왔나, 숟가락에 김치를 찢어 올려주었네


엄마는 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엄마랑 놀기 싫다, 안 놀 거다

그래도 숨바꼭질이 좋은 엄마는, 우리 엄마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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