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9.쇠날. 밤 눈

조회 수 783 추천 수 0 2014.12.31 01:10:10


서울에서 종일 있었던 대안교육 연수 하나.

10년 만입니다, 그 동네 가본 게, 대안교육이라는 동네.

아, 물론 지난여름 원주에서 한 걸음이 세상으로 나간 첫걸음이었겠으나

그건 교육부 주최였던 데다 이제 대안교육의 지평이 넓어져 제도에 가까워보였던 자리.

해서 변방의 물꼬는 외려 잘 모르는 이들이 많았던.


“아, 옥영경 선생님, 어서 오세요.”

주최 측입니다. 이름만으로 십오 년 여 아는 그입니다.

그는 사진으로 안다며 맞아주었지요.

그 재단의 기금으로(신뢰를 바탕으로, 쓰임을 묻지 않는 통 큰 기부로 유명한)

물꼬 상설학교 직전 동네사랑방을 운영하여 지역 아이들을 한 해 동안 만나기도 했던.

하여 실무자들끼리 서로 얼굴을 보고, 물꼬를 다녀가기도 했던.

그때 일곱 개 나라를 돌아보러 한국을 떠나있던 세 해 가운데 마지막 해였던.


강연을 왔던 교수님도 꼭 15년 전에 인터뷰로 만났던,

그 두어 해 뒤 라디오의 신년 특집 프로그램에서 윤구병교수랑 셋이 대담을 하기도 했던,

인사 나누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들이군요.

마치고 나오는 길,

“옥영경 선생님 아니셔요?”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물꼬 선생님이시잖아요.”

역시 어찌 아느냐 묻는 표정.

“물꼬 유명하잖아요!”

그런가요?

대안교육 판에서 그 역사를 짐작하기에

물꼬를 아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구분 되는 듯.

“그런데 나이가 아닌 것 같아 많이 닮았구나 하고 말았는데...”

“제가 모자 벗으면 흰머리가 엄청 많습니다.”

“그 많은 재주를 산골에서만 쓰시기엔...”

그랬던가요.

물꼬를 다녀갔던 친구입니다.

물꼬의 가회동 시절이었다 하니 그 역시 15년은 된 이야기.


꼭 10년 만에 보는 얼굴도 있었습니다.

같이 태국의 위파사나수행을 보름 같이 다녀왔던.

서울의 한 대안학교에 있었고 지금은 의정부의 대안학교에 옮아간.

“대안교육연대 홈페이지에 글이 올라오고 할 때 어쩌나 어떻게 하나...”

아하, 그래서도 물꼬가 유명세를 타기도 했겠군요.

상설학교 출발하고 1년이면 겪는다는 갈등을 교사 중심인 물꼬는 피해갈 줄 알았건만

아주 호되게 홍역을 치루었던.

이제 잊혀져가는 일을 그가 상기시켜주었네요.

그리고 알았습니다.

아, 시간이 그리 흘렀군, 이제 나는 좀 나아졌구나,

그 일로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살기도 했었지요.

“진위여부를 떠나 뭐 그런 일이 일어난 게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지.

그것도 시간이 흐르니 좀 낫네...”

뭐 어쩌겠는지요.

이제는 지독하게 흘러갔던 그 갈등의 시간들을 쳐다볼 수 있겠습니다요.

대안교육 판에서 일어나고 있던 갈등들 가운데

서너 손가락에는 들 사건이었다고들 했습니다.

하기야 선배 하나가 찾아와

‘아이고, 어쩌나 어쩌나 하며 큰 걱정으로 왔는데,

서울경기 권에서는 그 쪽 관련 잡지를 중심으로 아주 큰일이었는데,

여기 내려와 보니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어서 놀랬다‘는 일화도 있었지요.

그래요, 어째도 삶은 계속되지요, 일상은 흘러갑니다.

우리도 그리 흘러가고, 그리고 별일이 없는 한 늙고, 죽겠지요...


한 재단의 대안교육 지원문제에 대한 토의도 있었습니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 지원을 할 것인가 하는.

그런데 대안학교의 침체기이니 그것을 살리자 뭐 그런 식의 흐름.

아니, 교육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문제를 보아야지 않겠냐 발언했습니다.

저는 대안교육이 살고 죽는데 관심 없습니다.

물꼬가 그 출발부터 단 한순간도 스스로 대안학교라고 말한 적도 없고.

문제는 교육이 사느냐 죽느냐 아니겠는지요.

마치 대안교육에 대한 고민이 밥그릇 싸움에 다른 아닌 걸로 보이더이다.

지금 위기의 한국이라는 우리 삶의 지형 위에서

그 문제 하나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자유라거나 평등이라거나 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물음에 더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처럼

오히려 이런 시절일수록 본질을 헤아려보아야지 않는가 생각듭디다.

뭐 여담처럼.

그리고, 파머 파커의 책을 한 권 사서 돌아왔군요.


멀지 않은 곳에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도 보고 왔습니다.

우리와 과거, 우리 자신의 과거, 우리를 형성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룬다,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과거를 다시 찾고 싶어 하는 우리들 자신과 같다,

감독의 변이 그랬던.

이 순간도 바로 다음 순간 과거가 되고, 우리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여전하지 않은 자기 앞에 당황하고, 그래서 인정할 수 없고,

그러다 뜨겁게 자신과 악수하는 이야기라 할까요.

현실과 대사연습 속의 대사는 그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며

너무나 현실 같은 긴장감을 배역들 사이에 불러옵니다.

이럴 때 영리하다, 라고 말하는 듯, 영리한 감독이었지요.

영화의 배경이 된 알프스의 실스마리아...

니체는 긴 병치레로 ‘실스마리아’에서 요양했다 했습니다.

그의 ‘영원회귀’가 나온 곳이 바로 거기.

알프스의 장엄함과 이를 만들어낸 실스 호수의 황홀함을 본 니체,

며칠 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황홀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

모든 순간은 필연적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이곳이 배경이 된 또 하나의 까닭은 산악 영화 감독 아르놀트 팡크의 <말로야의 구름 현상>이라는 짧은 영상이었다고.

스위스 동쪽 끝 엥가딘 언덕부터 ‘실스마리아’ 위를 지나 실바플라나, 생 모리츠까지 이어지는 구름,

높은 산맥과 협곡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뱀의 형상과 비슷해 이름 지어진 ‘말로야 스네이크’ 현상을 담고 있다고.

음, 이제 알프스를 오르고 싶군요...

네팔 포카라의 산악박물관에서 알프스의 삶과 히말라야 삶을 교차하며 보여주던 섹션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런 맘 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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