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31.흙날. 눈

조회 수 660 추천 수 0 2015.01.06 03:23:15


이런! 꼭 이런 시기 팩스가 왜 문제랍니까.

발신은 되는데 수신은 안 되는.

서류를 못 받고 있는.

두어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방법을 찾아도 보고

매뉴얼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손을 대도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산마을에서 이러면, 그것도 휴일이 끼고 일정을 치러내야 하는 거면


계자를 하면 아이들 들어오기 이틀 전쯤 통화를 합니다.

왔던 아이들이야 알아 오겠거니 하지만

처음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님들이고 보면

목소리라도 한 번 듣고 나면 좀 더 편히 아이들을 보내는 듯하여.

좀 안심이 되시는 거지요.

그런데 서두를 일이 생긴,

미성년자 여행자보험이 제도가 바뀌어 전에는 대표자가 있으면 되었는데

이제 보호자 주민번호와 함께 접수해야 하는.

하여 오후와 저녁으로 이어지는 시간 내내 부모님들과 통화.

덕분에 여유 있게 왔던 아이들 부모님들과도 오랜만에 연결되었더랬네요.

몰아서 일을 하면 힘이 들더군요. 너무 오래 그런 방식으로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좀 더 날을 늘려 계자 준비를 하리라던 올 겨울,

이런 일까지도 그럴 수 있도록 돕는군요.

‘교사 미리모임’ 전날 장을 보고 돌아오자마자 밤늦도록 전화를 돌리고,

퍽 바쁘게 몰아야했던 일이었는데.


밤엔 식구들이 모인 방에서 도란거리며 바느질을 하였습니다.

산골 오두막의 겨울밤, 딱 그거더군요.

조각옷 하나를 짓고 있습니다; 조끼.

겨울이 가기 전엔 될 테지요.

그리고, 지난여름 한 어르신이 예쁜 옷감을 보여주시기

막 입는 치마 하면 좋겠다 감탄하니

둘둘 미싱질하여 둘을 만들어 당신도 달라시며 감을 넘겨주신 일이 있습니다.

이제야 치마 둘도 만들었지요.

이런 일을 할 때 정말 ‘사는’ 일을 하는구나 뿌듯하고 좋습니다,

무슨 사회적 성과가 아니라,

그럴 재간도 없지요마는.


해를 넘기며 원규샘에서부터 두루 샘들의 새해 인사들이 닿습니다.

부지런들 하시군요.

아는 여럿의 전화들도 들어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을지니.

자리를 옮기는 지역공무원들의 안부도 듣지요.

정말 섣달그믐이군요.


그리고, 12인의 세월호 헌정 산문집 <눈먼 자들의 국가> 한 구절을 곱씹습니다,

우리 슬펐던 2014년 대한민국에서.

(누구는 박민규 글 외에 읽을 게 없다고도 했지만,

 한편 박민규의 글에 대해

 이 나라 정치 발전의 적을, 우리를 돌아버리게 하는 많은 악덕을,

 모조리 수구보수 정권의 문제와 연대하지 못하는 힘의 문제로 보이게 한다는 데

 일정 동의가 되기도 했던.)

책 가운데 김연수 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래서 테이레시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가 바로 그대가 찾고 있는 범인이란 말이오."

인간이 저절로 나아지며,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우리가 착각하는 한,

점점 나빠지는 이 세계를 만든 범인은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은 또한 우리의 것이기도 한다.

그러니 먼저 우리는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힘으로 나아지는 길이다.

우리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으로 선출한 권력은 자신을 개조할 권한 자체가 없다.

인간은 스스로 나아져야만 하며,

역사는 스스로 나아진 인간들의 슬기와 용기에 의해서만 진보한다.

‘스스로’ 나아진 자의 슬기와 용기로 역사가 나아간다...'


스스로 말입니다.

2015년의 과제가 되는 건가요, 스스로 나아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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