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녹지 않은 눈 위로 달빛이 빠져

산마을의 밤은 강물에 반짝이는 햇살 천지 같습니다.

아이들을 맞을 채비를 하며 샘들은

자정이 넘은 이 시간에도 교무실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이 산골의 삶을 물꼬는 왜 유지하고 있으며,

이 젊은이들은 왜 이곳에 깃들어 이 밤을 지새고 있는 걸까요....


아침은 영하 15도의 새벽을 건너와 열렸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햇살 아래, 아마도 영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푹한 하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미리 들어왔던 95라인(95년생 샘들을 이리 부르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있었고,

이어 159계자 미리모임을 위해 샘들이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점심 버스로.


구석구석 청소를 하며 아이들을 맞을 첫 채비를 한 뒤 먹은 저녁 밥상,

모두 눈이 뎅그래졌지요.

물꼬에서 고기를 다?

물꼬 공식모임에서 유례가 없는 고기, 닭죽이었습니다.

소사아저씨가 여기서 키우는 오골계를 포함한 토종닭을 네 마리 잡아두었던 것.

모두 입이 아주 귀에 걸린.


'미리모임'.

교사교육과 속틀 짜기, 일 나누기, 그리고 곳곳에 필요한 안내 붙이기들.

오늘 미리모임은 샘들이 주관했습니다.

밥바라지 엄마의 준비를 더 충실하게 돕기 위하여 제가 부엌에서 움직이기로 하여.

한국을 비웠던 때가 아니고는 처음이었습니다.

탄탄한 교사층, 그러니까 물꼬로 말하자면 품앗이샘들 덕이었던 게지요.

새끼일꾼들 또한 그러하고.


계자를 맞는 우리의 마음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

그 마음에 대해서만 시작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늘 뭔가를 하며 그것에 대해 기대란 걸 한다.

그 끝이 실망일 수도 있고 기대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인데,

그 기대를 놓고 흘러가는 대로 맡겨보는 걸 해보면 어떨까 했습니다.

그리고, 깊은 경청과 온전한 받아들임, 순간순간에 대한 정성스러움,

더하여, 언제나 이곳에서 강조하는 말,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초등 3년 때부터 와서 군대도 다녀오고 낼모레 대학을 졸업하는 기표샘,

스무 살을 갓 넘기며 사대 학생으로 처음 와서 낼모레 서른에 이른 희중샘,

벌써 물꼬 7년차에 이른 초등 특수교사 휘령샘,

초등 때를 시작으로 새끼일꾼을 거쳐 품앗이샘이 된 연규샘, 윤지샘,

그리고 중요한 과정을 드디어 끝내놓고 기어이 물꼬에 와준 경철샘,

두 번째 걸음인 교원대 대표 민우샘과 노래하는 갈음샘과 예비교사 휘향샘,

이제 스물에 이른 인영과 해인, “옥샘, 이제 딱 십 년 됐어요!”

초등 때 다녀가고 이제 중고생 새끼일꾼으로 합류하고 있는

자누 현지 태희 해찬 준하 가온,

계자 첫걸음인 예비사회인 진성샘,

산마을에서 홀로 공부하다 10학년으로 제도학교에 처음 간 류옥하다도

이번 계자에는 그네 학교 일정을 빼고 계자 일정에 합류키로 합니다.

초등 때 물꼬에서 방과후 공부도 하고 계자도 다녀갔던 현진샘(여러 현진이 가운데 91년생)이

사회에 나가는 첫 발을 딛기 전 물꼬를 다녀간다 하였으나

집안에 일이 생겨 그만 발이 묶인 것을 빼면,

두 아이를 보내며 업혀 다니던 아이가 드디어 일곱 살이 되어 오게 되면서

밥바라지를 하게 된 임지양엄마까지,

물론 소사아저씨인 젊은할아버지와 교장 일을 보는 저까지,

스물 둘의 샘들이 함께 하는 계자.


일꾼들의 밤참을 위해 준비해온 것들도 한가득 곳간에 쌓였습니다.

밥바라지 엄마가 가져오신 것들은 생전 여기서는 듣도 보도 못한 것들,

직장을 가진 샘들도 여기 살림을 살펴 밤참거리를 사들여오고,

밥바라지 엄마에게 밥 세끼에 늦은 밤참까지는 너무 일이어

샘들 하루재기 끝의 밤참은 늘 제 일,

그렇게 다들 일을 덜어주고 있었지요.

이 놀라운 사람들 틈에서 행복합니다.

그게 또 열악하기 짝이 없는 산마을 삶을 살아가게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저를 꼬드겨 물꼬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나는 산골 가서 살 자신이 없지만 당신은 계속 살아줘.”

 “까짓것 뭐 살아주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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