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달날 눈, 102 계자 여는 날

조회 수 1355 추천 수 0 2005.02.02 23:13:00

1월 31일 달날 눈, 102 계자 여는 날

< 겨울에도 등이 푸른 햇살-3 >을 시작합니다.
얼어붙은 대해리에서 아이들 서른일곱과
열다섯의 샘들이 102 계자를 함께 합니다.

"쌍둥이예요."
"우리 남편도 남녀쌍둥인데..."
도윤이랑 순범이를 맞습니다.
다원이랑 지원이는 더 똘망똘망해져 왔습니다.
누가 손위인지 모르겠더니
인영이는 이제 확실한 세훈이의 누나가 되어 왔구요.
변하지 않은 표정으로 대호가 들어서고
정후가 드디어 동생 지후를 데리고 나타났네요
(동생이 자라면 같이 꼭 오겠노라는 형님들이 있지요).
"어, 희영이는?"
"영어 캠프갔어요."
겨울 반팔의 영웅 영환이도 들어오고,
"태정이 없이 혼자예요."
지윤이도 들어오고,
질긴 부채쟁이 호정이도 오고,
"이게 누구야?"
현휘도 들어섭니다.
"현지야, 아니..."
현지는 이제 고교생이 될 건데, 꼭 그렇게 생긴 지혜도 들어옵니다.
"덕현이, 재현이, 성용이,..."
"주승이구나!"
2005학년도 입학지원자였던 주승입니다.
인형 같은 영인이랑 세인이,
현서도 수진이도 희주도 기환이도
우식이도 도현이도 도훈이도 승은이도 세영이와 주현이도,
이름을 읽기도 전에 우르르 달아납니다.
"있잖아요..."
벌써 말을 붙이는 그는 현석이네요.
지혁, 영석, 성욱이, 도훈이는 어떻게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너 일곱 살이지?"
"어떻게 알아요, 귀신도 아니고?"
1학년 입학 선물로 물꼬를 왔다는 수민입니다.
"어, 동영이 아냐?"
이상도 하지요, 그가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행정착오였던 모양입니다.
얼른 이름을 써넣습니다.
류옥하다가 대문에서 그 모두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안내를 시작합니다.
시선은 앞인데 자꾸만 자꾸만 다른 목소리가 슬쩌기 끼어듭니다.
아줌마들 낮은 수다 같습니다.
아, 아무래도 이번 계자, 만만찮을 듯합니다.

연극놀이 한 판입니다.
늘 생각하지만, 연극, 그것 참 괜찮은 놀이입니다.
번쩍번쩍 잘도 올라가는 손들입니다.
"집에 갈래요."
"그래, 가라."
손을 들던 그를 두어 차례 지나쳤는데,
왜냐면 아직 시간 많으니까,
아직도 자기를 보일 수 있는 것들 남았으니까,
마음 상한 덕헌이가 그러데요.
두말 않고 가라 했지요.
"이것 끝나고 갈 거예요."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연극놀이를 밀치고 갈 수가 있을까요.
종이도 가져오고 공도 가져오고 바늘도 가져왔다가
다시 그것을 치우고 치운 공간을 느끼며 몸을 써봅니다.
땅 속에서부터 한 해를 살며 세상으로 나오기도 하고
동물세계를 가보기도 하며
걷고 또 걸었지요.
군무처럼 한 편의 그림을 무대에 한 사람씩 나와서 붓질도 합니다.
놀이터 풍경입니다.
누구는 오줌 싸는 강아지가 되고
구름사다리를 타거나 그네를 타기도 하고
그 그네를 누구는 기다리며
누구는 싸움을 하고
우르르 깔깔대며 노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울고
누구는 모래성을 쌓고
또 누구는 나와서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심술쟁이가 됩니다.
장관입니다.
마지막은 두 패로 작은 연극을 만듭니다.
사람이 도끼가 되고 연못이 되고 나무가 되고
어느새 수다쟁이 모두가 그만 무대에 흡입되어
지나는 바람 소리가 유달리 컸더라지요.
남자샘들은 그 바람을 뚫고
나무를 하러들 가셨더이다.

해 지는 대해리에 함박눈도 따라왔습니다.
새끼일꾼으로 지난해 말 합류했던 지민이형아가
이제는 지민샘이 되어 그 눈길을 헤치고 들어왔습니다.

연극으로 풀어진 마음에 대동놀이로 강당을 휘젓고 나니
예서 사는 게 문제 없어진 대부분의 아이들입니다.
수다가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영석이가 울었습니다.
"여태 신나게 뒹굴어놓고는..."
잠시 공백이 생기니 엄마 생각이 나버린 겝니다.
엄마가 전화 오면 데리러온다 하였답니다.
불러서 이리도 말해보고 저리도 말해보지요.
알아듣고 잠자리로는 가는데,
그래도 서러워 서러워 크게도 울었더랍니다.
"엄마가 보고 싶어? 나를 보라니까.
아빠가 보고 싶어? 나를 보라니까."
숫제 말이 안되는 사람이라고 기막히다는 듯
웃음이 배시시 나오려는 그입니다.

"너 뭐하냐?"
와서부터 이 밤이 되도록 열심히 수첩을 든 아이가 있습니다.
체험활동보고서래나 뭐래나.
뭐 모든 움직임을 아주 필름 찍듯 빼곡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그거 하느라 놀이 안으로 들어오지를 못하는 겁니다.
안쓰면 엄마한테 혼난다는 현석이 말입니다.
기다리면 저도 지칠 날 있겠으나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있는 게 또 아니지요.
해서 마지막날 쓰는 시간이 있으니
그걸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을 거라 말해줍니다.
내일은 수첩에서 자유로와지겠지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행복하다는 은미샘,
연극터에 와서 연극을 한 경험이 되려 이 곳에서 방해가 되더라고
가르치려들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인화샘,
처음 새끼일꾼으로 대입시험을 끝내고 가벼운 맘으로 왔더랬는데
이 공간이 진지하게 생각됐다고
신념을 읽으며 많이 느꼈노라고
지민샘이 다시 온 까닭을 내놓습니다.
캠프도 가고 실습도 나간 교대의 경험이 있어 낯설진 않으나
일곱 살에서 6학년 아이까지를 모으는 건 쉬운 게 아닌 듯 하다는 현애샘,
계자 도움꾼으로 2년여 만이라
아이들을 어찌 대해야 하나 걱정이라는 승렬샘
(세상에는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이 몇 있는데
이 걱정도 그 한가지라 말해주었지요.
마, 그냥, 만나면 되지...)
자신이 누린 즐거움을 아이들도 느끼게 하리라는 무열이형아,
아이들 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 '나무스케줄'을 짜는 승현샘
(승렬샘은 승현샘이 감동이라 했지요),
이 험한 날씨에 나무하는 손을 보태러왔다는 동인샘,...
이 좋은 분들이 엿새를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더해서 이 눈, 이 바람, 난로 위 주전자 물 끓는 소리, 이 아랫목,,...
얼마나, 무엇을 더 바란답니까...

아주 사적인 이야기 하나.
저희 집안에 작은 갈등이 하나 생겼답니다.
예전 같으면 잘잘못을 잘 따져본 다음
옳은 쪽에 힘을 보태며 그른 쪽을 나무랐을 겝니다.
그런데 수화기를 들고 오래 오래 얘기를 나누며
서로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찾고 또 찾아봅니다.
제가 요즘 누리는 평화의 기운을 그들과 나누는 게지요.
그러는 사이 이쪽도 저쪽도 마음들을 많이 가라 앉혔습니다.
나아가 서로에게 고마운 적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두 어르신들이 다시는 보지 말자고 골을 파지는 않겠다 싶데요.
그래요, '내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내가 고요하니 그도 고요해집니다.
내가 평화로우니 그도 평화로워집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하면 그도 행복하겠지요.
그대, 행복하소서,
세상이 행복하기를 정녕 바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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