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불날 갬, 102 계자 둘째 날

조회 수 1579 추천 수 0 2005.02.03 13:05:00

2월 1일 불날 갬, 102 계자 둘째 날

맵기도 한 바람입니다.
체감 온도가 20도라는 젊은 할아버지의 전갈이 있었습니다.
눈 때문에 버스도 멈춘 길을
황간에서부터 택시타고 와 마을 들머리에서 2킬로미터를 걸어
태석샘이 아침밥상에 같이 앉았습니다.
마을 길 눈 치우러 나가자는 이장님 안내방송도 없는 것은
눈발이 아직 날리기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바람, 살을 엡니다요.

해도 늦은 이 산골이라 몸도 늦게 깨어납니다.
몸살리는 일을 하신다는 현미샘이 해건지기를 돕습니다.
이 추위에도 난로를 켤 필요 없는 모둠방이 고맙습니다.
전기판넬과 석유난로에 의지하던 것을
나무보일러로 바꾼 첫 겨울입니다.
에너지를 바깥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지만
(그래서 모두 나무를 해 내리느라 고생은 큽니다만)
아이들이 보다 건강한 구조에서 잘 수 있고
방 전체로 온기가 돈다는 것에
기쁜 샘들입니다.
푹 잘 자고 가뿐하게 일어난 아이들을 보는 아침은 더욱 그러합니다.
(동인샘이 밤마다 불을 지키는 파수꾼역을 맡으셨지요)

"산도 숨을 못 숴."
모진 날씨입니다.
눈밭에서 한바탕 놀까 하다 것도 접습니다.
느리작느리작 오전을 보내자합니다.
아랫목에 배를 붙이고 도란거리는 이들도 있고
이불 깔고 둘러앉아 노는 패도 있고
다른 방에서 알까기를 하거나 테니스공을 주고받습니다.
눈바람에 아랑곳 않고
시내로 내려가 얼음을 깨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눈을 치우거나 축구하는 녀석들까지 있습니다.
기환이는 피아노 곁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난롯가에 앉았던 아이들이 손뼉을 쳤지요.

산에 가기로 한 오후도 시간을 바꾸어야했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만났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든 무엇이나 해낼 수 있는,
준비됨을 나타내는 것 아니겠는가 싶데요.
물꼬가 올 겨울 계절학교 12년째를 맞습니다.
바람 불어도 눈 내려도 가슴 내려앉는 순간에도
고목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게지요.
세월, 정말 중요합디다.
남자샘들은 나날이 더해가는 추위가 걱정이 돼
할 수 있을 때 해두어야 한다며 나무하러 나가고
여자샘들은 교실을 엽니다.

'한코두코'에는 지윤 도윤 승은 현휘 대호 세영이가 들어갔습니다.
목걸이도 뜨고 팔찌도 뜨고 손목아대도 뜹니다.
목표 없이 계속 떠본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같이 앉아 있으면 얘기가 오가기 마련이지요.
세상에, 승은이가 재령이 동생이랍니다.
일곱 살 재령이가 한 해 뒤 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왔을 때
학교가 그 예쁜 아이 다 베려놨다고 샘들이 분노했더라지요.
그 아이는 훌쩍 자라 낼 모레 고교생이 된다 합니다.
이제 동생들을 보내온 게지요.
그 아이 지금 어찌 자라 있을지요...
지윤이가 코를 잡는 더 쉬운 방법을 알고 있어
아이들이 달라붙어 잘 배웠더랍니다.
대호는 '목요일까지 하겠다' 했다지요.
유상샘은 아이들 손이 더딜 거다 생각하고 들어가
아차 싶으셨다더이다.

상자 안에 공원을 만들고 있는
도훈 재현 동영 기환 지후 영석 호정 세훈 순범이는
'주물럭'패들입니다.
시냇물이 흐르고 연못이 있고 그 연못에 거북이 놉니다.
연못가 의자에 앉았는 사람, 그 곁에 바구니도 있네요,
모닥불도 피웠어요.
남자아이들이 어느새 메이플스토리에 나오는 괴물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공원은 메이플스토리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풀가루 물감 흩어진 방을 어린 동영이랑 영석이가 다 치웠다지요.

수진 수민 현석 류옥하다는 달력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도토리 하나가 떨어져
수민이의 그림 속으로 들어갔답니다.
7-8월 달력이라면 으레 바다가 등장하기 마련이던데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를 현석은 그렸답니다.
첨엔 제가 5월인 줄 알고
책방으로 달려가 방정환 책을 가져오더라데요.
"왜?"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현석이는 드디어 수첩을 치웠답니다)

세인이를 빼고는 바느질이 처음이라는 덕헌 지원 다원 인영 지혜가
'한땀두땀'에 들어갔습니다.
계속 집에 가고 싶다면서도 덕헌이는
굉장히 집중하며 바느질을 해서 사람들을 웃게 했다지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데 거리낌 없는 아이들을 보며
작은 것 하나에도 끝없이 망설이는 자신을 돌아보았노라
현애샘의 고백도 있었지요.

마음에 드는 교실이 없는 아이들끼리 '다싫다'를 열었습니다.
실을 다루어보기로 했지요.
영환 도현 주현 희주 성욱 성용 현서 지혁이가 함께 했어요.
실을 엮어봅니다.
"어, 알았구나. 이제 하산해라."
자신이 깨친 바를 널리 전파하라 했습니다.
저도 더 하고팠을 것을 다른 이를 도와주느라 영환이는 바빴네요.
옆에서 달력을 끝낸 류옥하다도 저 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돌아가며 아이들을 돕습니다.
성용이, 맘대로 안되니 기어이 울음을 터뜨립니다.
옆에서 현서, 자기도 제대로 안되면서
도와 주마 뎀비네요.
도현이가 제 실이 제대로 엮기지 않았다 갸우뚱거리는데
류옥하다가 소리칩니다.
"예뿌네. 배운 대로 안돼도 그것은 그것대로 멋이 있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매듭이야."
들은 풍월을 읊는 게지요.
그런데 그게 용기가 되어 너도나도 되든 안 되든 매달려봅디다.

한데모임을 하기 전 슬라이드로 동화를 하나 봅니다.
그 참, 동네 아줌마들 같다니까요.
대체로 그 가라앉은 분위기에 숨소리도 조심스럽기 마련인데
구절마다 토를 다는 이번 계자 아이들입니다.
그런데도 눈을 떼지는 않고.
"또 보고 싶어요."
동영입니다.
"아직 안끝났어요?"
끝나지 않은 것 자기가 행여 놓칠 세라
순범이 걱정입니다.
동영이에게 낮에 따로 읽어주마 합니다.
"부엉이 보고 싶다!"
도훈입니다.
"보러 갈까?"
예 제에서 대답이 터져 나옵니다.
어느 밤 우리는 부엉이 구경을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승렬샘이 남자방 동화읽기를 맡았습니다.
어찌나 귀를 잘 기울이던지
감동이었다지요.
듣는 것에 기울이는 주의가 어떤 느낌인지
고스란히 아이들과의 교통이 전해오던가 봅디다.
청소를 해도 작은 애들이 한다,
왜 클수록 안 움직이는가 한탄도 했더이다.
배움이 늘수록 우리의 삶의 태도는 배움과 외려 멀어지는지,
학교가, 이 사회가, 우리가,
아이들을 날마다 버리는(오염시킨다?) 게 아닌지,
그래서 잘 살아야겠는 거지요.

"...현실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법을 배워요.
젊은 분들이 나무를 해 와서 그 큰 통나무를 끝까지 옮겨내는데,
감동이었어요,...
수많은 알음알이가 이런 행동보다 못해..."
53년생이라는 동인샘은
모두 정말 좋은 경험들을 하신다,
당신은 이런 r곳도 모르고 살았노라,
젊은 모두를 칭찬하고 격려해주셨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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