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 이르렀군요.

‘2014 겨울 백쉰아홉 번째 계절 자유학교-놀이가 사태 진 골짝’,

정말 절묘하게 제목과 잘 맞았던,

그러니까 놀이가 정말 사태졌던,

대동놀이만 해도 샘들이 모두 돌아가며 풍성하게 진행한.


이불을 마당으로 들고나가 털고,

어른도 아이들도 해건지기 대신 ‘물꼬표 애국조회’.

첫날 이곳에서 무엇을 할까 머리 맞댈 때 채성이의 안이었더랬지요,

모두 해보자 그랬고.

경철샘이 교무샘 역으로 사회를 보고, 휘령샘이 교감샘 역.

우리 앞에 밥이 이르기까지, 불이 이르기까지 감사할 존재들에 대한 절.

그것도 자신을 바닥에 놓는 대배로.

"어른들은 반듯하게, 아이들은 편한 자세로 애국조회를 계속하겠습니다.

다음은 애국가제창이 있겠습니다. 몇 절 할까요?

아이들한테 물어가며 진행이 이어집니다.

“다음은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이 있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자유학교 물꼬 어린이 여러 분.”

앞에 앉은 세 딸들, 은규 슬규 희원이 가르쳐준,

훈화 말씀 시작은 그리 하는 거라고 같이 읊조려준 대로.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합시다.

행복하고 행복하고 또 행복합시다.”

뙤약볕 아래 운동장에서 길고 길었던 훈화말씀을 들었던 어릴 적 기억,

오늘은 단 두 문장으로 끝내기!


상 수여식이 이어집니다.

바른생활상(‘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을 잘 실천한), 밥(밥 잘 먹은)상, 인상(인사 잘하고),

책(책 많이 읽고)상, 자유(한껏 자유롭게 잘 논)상 후보자를 선출하고.

그런데 아이들이 샘들도 끼워주고 있습니다.

대동놀이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자고 밥도 같이 먹는 그대로.

아이들 속에서만 뽑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지요.

그러니까 동급으로 본다는, 한데모임에서도 같은 한 표를 행사하는.

그렇구나, 그렇구나, 우리는 애어른 없이 함께 엿새를 꾸린 구성원들이었던 겁니다.

또 자신을 추천하는 이들도 많았지요. 자신을 내세우는 모습들이 얼마나 당당하던지.

정성스럽게 휘령샘이 쓴 붓글상장과 작은 전통주머니에 담긴 상품도 전달.

다음은 샘들의 축하공연.

새벽 3시 고래방에서 연습하고 온 샘들.

그리고 모두의 ‘떼춤’.

마지막으로 교가제창.

“자유학교 노래 1, 2 다 불러요!”

그러지요, 뭐.


아침을 먹고,

처음 왔을 때 누군가 우리를 위해 해준 준비처럼

다음에 이곳을 쓸 이들을 위해 준비하는 너른 마음으로,

단지 내가 썼으므로 책임지고 치운다를 넘어, 먼지 풀풀.

그리고 갈무리글 쓰고 복도에서 길게 늘어서서 ‘마친보람(졸업식)’하고

버스가 대해리를 나가자 날 매워지고 눈싸라기 날리는.

날마다 기적을 만나는 물꼬.


영동역.

휘령샘을 중심으로("휘령샘아, 태희가 감동받았더란다, 인사말에") 물꼬장터를 끝으로 다들 헤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손풀기 한 그림 돌돌 말아 리본으로 묶어 빛나는 졸업장처럼 들고.

3년 건호, 저를 보며 아래위를 훑었습니다.

“옷이 왜 그래요?”

“왜?”

“왜 그렇게 입었어요?”

“하이고, 이제 이것들이 할머니 옷 입는 거까지 간섭일세.”

남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기차를 기다리는 아이들 틈에서 건호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그 말이 무슨 뜻이야?”

“남들하고 좀 다르잖아요.”

하하하.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말이 건호가 뭔가 보편의 눈을 획득해가는 듯해서 저 아이 또 컸네 싶었던 순간.

기발하고 독특하고 통통 튀는 우리 건호에게 보편적 눈까지 있다면 얼마나 탁월할지.


휴가가 짧아 도중에 먼저 갔던 물꼬 8년차 희중샘은 글월로 참석했지요.

첫 계자 합류했던 그해 여름, 세 차례 있던 계자를 내리하며

그로부터 모든 방학에 물꼬에서 살았던 그는

‘그렇게 일곱 살에 처음 본 세영이는 벌써 6학년이 되었’다 했습니다.

‘95라인에 이어 96라인도 이젠 새끼일꾼을 끝으로 다음 계자부터는 품앗이가 되는 해인이와 인영이,

 5학년 때 처음 만났는데 벌써 20살이 되고,

 새끼일꾼으로 같이 물꼬를 꾸려왔는데, 역시 말이 필요 없는 인영이는

 제가 일하고 있으면 먼저 달려와 샘 머 도와드릴까요 하고 

 보이지 않는 일들을 찾아서 하고 대단하고 기특했’다 전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해인, 자누, 현지, 태희, 해찬, 준하, 가온, 하다 모두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함 속에 잘 움직여 주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계자의 일정을 남겨두고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기차에 오르고 샘들은 역 앞 식당에서 갈무리 모임,

오래 왔고 많이 왔는데도 물꼬 모르는 게 있더라는 윤지샘을 시작으로.

젤 재미있었다, 담에 올 수 있길 바란다, 계속 오고 싶다,

전날까지 엄마 볶아서 왔다, 같이 또 보자,

이제 이곳이 일상 같다,

물꼬가 참 좋은 곳이다,

샘들 많았고 샘들 좋았고 샘들 움직임도 좋았다,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빠져들었던 계자였다,

일주일 동안 아무 걱정 없이 공기 좋은 곳에서 잘 쉬고 정말 좋았다...

그리고 처음 걸음한 진성샘,

“새끼일꾼들 보며 저 나이에 저런 일들을 어찌 할까 싶었습니다.

 곧 취직하면 두 손 가득 들고 오겠습니다.”

빈손이래도 봅시다려.

샘이 물꼬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듯, 물꼬도 샘한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그래서 품앗이 아니더이까.

마음 풀어놓으러도 오시어요. 밥 내고 잠자리 내리다.


“정말 좋았던, 특별했던 159계자였습니다.”

샘들이 안정적이고 일을 많이 나누면서 제가 얻은 여유가

계자 전체를 잘 보고 한편 더 세세히 볼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그래서 미리 할 수 있었던 물밑 교섭이 계자를 순조롭게 하는 데 일조 한 것도 있지 않을지.

(큰 아이들을 따로 불러 형 노릇 해달라는, 한편 계자 아이로서의 마지막 겨울을 잘 즐기라는 부탁을)

“한번 오고 떠날 수도, 그리고 오랜 뒤 올수도 있겠지만

 어제 다녀간 듯 오십시오, 물꼬 여기 있겠습니다.”

미리모임 하던 날 진성샘한테 물었더랬습니다.

“샘, 물꼬가 뭐 하러 이런 열악한 곳에서,

뭐 할라고 이런 무모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의미가 있으니까...”

“일종의 저항이지요. 이 자본의 횡포에 인본주의적인 외침 같은?”

그런데 그걸 혼자 어찌 한단 말인가요, 그걸, 같이 합시다려. 연대!


영동역으로 나갈 땐 기표샘이 운전을 해주어 실려 갔고,

돌아올 땐 그예 졸려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인.

아이들이 있는 동안은 숙직인 셈이어 두어 시간 잠도 많을 때가 흔하지요.

아이들이 와있는데 그 잠이 어찌 깊을 수 있을지요.

류옥하다 선수 있을 때 사진까지 마저 정리하자고 같이 교무실에 앉았는데

하품하며 몇 번을 의자에서 일어나 잠을 깨워야 했던.

기표샘, 이제 오기가 날로 쉽지 않아질.

“기표야, 그래도 겨울에는 와야겄다. 불도 때고 계모임 삼아 모여야지.”

“아고 내가 돈 벌어서 보태면 되지. 보일러 바꿔주께. 5년만 기다려요.”

이 시대, 전 세계적으로 자본의 위기에, 한국사회의 어두운 경기에,

사회로 나가 저 건사하고 살면 다행일 것.

물꼬에는 한 달에 만 원씩 보태는 논두렁이 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숫자이지만 물꼬의 큰 힘이지요.

그렇다고 기부자 예우프로그램이 있는 단체도 아닌데

그저 신뢰로 마음을 보태는, 아무런 댓가 없이, 분들이십니다.

새끼일꾼들이며 아이들이며 그들의 부모님들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논두렁이라 부르지요.

아이들도 자라 중고생 자원봉사자 새끼일꾼을 하고 스무 살이 넘으며 품앗이일꾼을,

그리고 경제활동을 하면 후원을 시작합니다.

민우샘도 돌아가자마자 당장 후원을 시작했더군요, 손발 보태는 품앗이를 넘어.

샘들도 아이들한테 묻혀가지 말고 밥값은 내고 모이자, 그래서 계자에 샘들도 밥값을 내는데

민우샘은 잘못 보낸 게 아닌가 확인도 해야 했습니다, 통장에 찍힌 송금액이 많아.

젊은 사람이 그런 마음을 어찌 쓰는지.

‘염치’와 ‘경우’에 대해 생각하게 하더이다.

휘령샘도 교사로 첫발을 디디며 경제활동인이 되자 그렇게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기표샘과 희중샘은 저들 먹는 것들을 바리바리 차에 실어 들어오지요.

진성샘도 곧 사회로 진출하며 자리 잡으면 삼촌 내복부터 사드리고 후원을 하겠답니다.

그런 마음들이 물꼬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이는 아이들에게 가는 기운이 어찌 아니 좋겠는지요.

계자를 시작할 무렵 새끼일꾼 성재 형님의 어머님은 아주 커다란 김 상자를 보내셨지요.

성재 아니 온 대신 김이 왔습니다.

계자에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들 말고도 여기저기 보태는 마음들이 같이합니다.

산오름에 쓴 군용 핫팩도 선배가 보내준 것이지요.

밥바라지 엄마는 물꼬 샘들한테 받은 감동을

갈무리하는 영동역까지 나와 또 밥으로 대접했습니다.


여태 밥을 해주었으니 이제 해드리는 밥상을 받고 가라 밥바라지 엄마를 붙잡았지요.

무엇보다 아버지까지 들어오기로 하였으니 가족상담하기 딱 좋은 시기라고.

그렇게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밥을 해주고 계자 후일담을 나눈 뒤

지양샘과 아이들을 사택으로 올려 보내고 부엌정리를 좀 했습니다.

이제 일상을 움직이기 위한 체제로 바꾸어야.

빨래며 며칠 수습을 해야 할 것이고,

아, 아이들 남긴 글도 누리집에 올려주어야지요.

이제 1월은 한 제도학교의 자유학기제 기획서를 준비하는데 거의 써야할 것.

간밤 놀랬더랬지요, 부엌곳간이며 부엌보고.

남아있을 이를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놓았습디다.

물꼬는 밥 잘하는 사람, 일 잘하는 사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결로 하는가가 중요.

온 정성으로 해주셨습니다.

그 밥이 어찌 맛있지 않고 그 밥이 어찌 살로 가지 않겠는지요.

고맙습니다!

역에서는 승욱의 엄마, 그러니까 지난여름 밥바라지 엄마 미숙샘도 만났네요.

승욱이를 데리러 왔지요. 청소년계자를 같이한 현우도 같이 다녀갔습니다.

고마운 인연들일지니.

누구보다 이쁜, 자주 보니 그만큼 더한, 밥바라지 뒷배 윤지샘와 연규샘,

표도 안 나고 힘은 무지 들었을,

압니다, 제가 압니다.

얼마나 고단들 하였을까요.

아이 적부터 봤던 제자이고 이제 동료이고 벗이고 도반인 그들입니다.

이 겨울을 같이 보내 고맙습니다.

“훌륭한 너희로부터 또 깊이 배웠노니.”


계자 뒤 옷방에 남겨지는 일이 너무 많아

물꼬 공간이 함부로 대해진다는, 심지어 내가 함부로 대해진다는 마음까지 일어나곤 하였지요.

헤집어놓은 옷은 둘째치고라도 옷방에서 꺼내 입은 옷의 양은 어마어마한 빨래였습니다.

겨울이고 보면 외투들이며 그 부피가 얼마나 클 것이며

들 힘도 힘이지만 얼마나 낭비인지.

매번 계자가 훑고 간 물꼬에 남아서 손발 보태는 이들이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더랬지요.

이번에는 옷방을 어른들한테는 신고제로, 아이들에겐 허가제를 도입했습니다.

돌아와 둘러보니 빨래더미부터 일단 적더군요.

때로는 작은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좀 더 원활한 길을 찾을 수도.

그런데 이 문단의 핵심은 연규샘이 욕봤다!

계자 시작 전 윤지샘 경철샘 류옥하다가 옷방을 정리했고,

연규샘은 계자 기간 옷방지기 역을 겸임.


계자는 늘 하나하나 특별하지만, 빛나는 159 계자였습니다.

음... 아무래도 이번 계자 시작하며 잘 멕여(키우던 닭을 네 마리 잡은) 그랬던가 싶은, 하하.

아이고 어른이고 가슴 느껍던 시간들,

아, 산골살이 고단타고 어찌 이 일을 못한다 하겠는지요,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감동시키고 힘이 나는 일을,

우리 삶을 윤내는 일을,

우리 아이들을 빛나게 하는 일을.

그래서 또 물꼬에서 살겄습니다.


애쓰셨습니다, 아이들도 샘들도.

고맙습니다, 아이들도 샘들도.

모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런데, 샘들아, 물컵 좀 챙기소. 공지글 꼼꼼히 처음처럼 읽어보기!

 하여튼 내 깊은 걱정은 샘들, 어른들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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