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집단상담이 있었다.

계자를 정리하는 글이며를 계자 끝에 달고 주말에 몰아서 해버리자 하였지만

늘 닥친 일에 밀리기 일쑤인 것이 물꼬 일이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 가진 문제 앞에 더한 무엇이 중요할 것이며,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 동행하는 일이 또 물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일 터.

더구나 온 가족이 한 자리에 앉아 공동의 문제를 같이 바라보는 기회가 많지 않고

일단 모일 수 있는, 그것도 집을 떠나, 이런 계기가 있어야 접근이 쉬울 것이기에

오늘 한 가족이 구성원 모두 물꼬를 방문하여 상담에 들어갔다.


엄마는 의욕이 강하고 그런 만큼 전 가족 구성원을 컨트롤하고파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교육관도 다르고, 그러기에 아버지의 지지도 어렵고,

(생각난 이야기 하나;

여자가 하루에 2만여 낱말을 쓰는 반면 남자는 하루 7천여 단어를 쓴다고.

만나는 초창기엔 여자의 말을 잘 들어주던 남자가

3년여가 지나면 안 듣는다는.

그런데, 그건 남자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대로’ 돌아간 것.)

자식들은 그 의지를 따르지 못한다.

심지어는 퇴행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과외조차 다른 아이들과 보조가 맞추기 어려워 단독으로 시켜야 한다.

그러니 교육비용은 더욱 늘어나고

그건 다른 생활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걸 뜻하며,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감정도 동일한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고,

그런 가운데 아이들 머리는 커져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오직 화와 큰 소리만이 가족을 움직이는 기재가 된다.

이제 어쩔 것인가.


엄마가 자신이 진정 무엇을 위해 그리 해왔던가 한껏 말하며 속을 풀어내는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엄마에게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아빠는 당신의 입장을 비로소 엄마에게 전달하는 장이 되고,

자신을 이해받고 존중받는, 한편 이해시키는 여정 속에 엄마는

비로소 남편과 아이들의 하는 말도 귀에 들이게 된다.

자신의 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문제를 그것을 둘러싼 구성원들이 다 모여 푼다면 최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충분히 꺼내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어떤 변화를 원한다면 각 개인이 감당하고 변해야.

그런데 그게 동시적이어야 한다는.

특히 엄마의 문제는 영향력으로 봐서 가족 모두에게 거의 절대적.

하여 이런 과정을 통해 문제에 같이 접근하게 되고,

엄마의 쏟아지는 눈물과 회한이 다른 가족구성원들에게 깊은 이해로 간다.

고마울 일이다.

금세 어찌 모든 습이 바뀌고 하겠는가.

한 지점은 될 수 있으리라.

곧 이사를 한다고 한다.

다른 장에서 조금은 다른 질들로 모일 수 있길.

그리고 물꼬가 마음을 푸는 장소로 잘 사용되길.

아침부터 시작한 상담이 늦은 점심을 먹고서야 끝났다.


간밤,

자꾸 밀려드는 졸음을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를 깨워가며 류옥하다는

사진정리를 돕고, 새벽 버스를 타고 나갔다.

정부기관들이 세종시로 옮아가면서 기락샘이 서울에서 유성으로 이사를 하고,

그 일을 도우러 유성으로 향한 것.

저녁에는 집안 행사가 마침 동학사에서 있어 아이는 역시 거기도 갔다.

물꼬 일정은 늘 그런 일들보다 우선순위에 있다.

아이가 자라 집안일을 수행해주니 고맙다.

이것은 커가면서 더 커질 것이고,

나이 더해가며 집에서의 아이 자리는 더 넓어질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어갈 것.


밥바라지 엄마 지양샘이 아이들과 함께 좀 쉬었다 떠났다.

계자 내내 밥을 해주셨던 엄마는 그렇게 밥상을 받고 갔다.

물꼬의 일이란 게 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더란 말을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양샘이 일을 못하더란 말이 아니라

정말 온 정성으로 해주는 밥바라지 일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다.

깊이 또 배웠다.


계자에서 나온 빨래들, 옷방에서 사람들이 꺼내 입은 옷들을 빤다.

가마솥방 청소를 하고 부엌을 정리하고.

이제 일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159 계자에서 아이들이 남긴 갈무리글을 컴퓨터에 옮기고.


그리고 늦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이스라엘 영화 <누들>을 보다.

계자 한다 애썼다고 자신에게 주는 선물의 시간.

2000년대 초반 이스라엘은 수만 명의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심각해지자

2002년 이민국이 설립된 이후 당선된 수상은 이들을 모두 강제 추방할 것을 선포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으로 얼룩진 나라.

전쟁은 개인의 삶을 할퀴고,

자본이 무소불위의 권력인 시대에 돈을 벌기 위해 떠나온 불법노동자의 삶도

전쟁통에 다름 아니다.

전쟁으로 두 번이나 남편을 잃어야 했던 스튜어디스 미리와

엄마가 강제 추방당해 이국에 덩그마니 홀로 남겨진 아이,

미리의 언니는 이혼의 위기에 시달리고,

미리와 같은 회사를 다니는 오랜 동료인 형부는 미리랑 이야기가 더 잘 통하고...

국수의 라틴어원이 노두스(Nodus), 즉 매듭이라지.

삶의 매듭은 그렇지 풀리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탁자에 놓인 누들을 감쪽같이 해치워 ‘누들’로 불리고,

누들의 동거는 언어를 넘어 어른들 삶의 꼬인 매듭을 푸는 동기가 된다.

언어 너머의 교감도 빛나지만

사람들 사이의 대사 또한 빛이 나는 영화.

인간관계의 미묘함이 그 대사로 흘러 몇 번이나 돌려 보게 된다.

관계에 대해, 그 관계가 어떤 말들로 이루어지는지를 집중하며 보게 되는.

얼켰던 국수가락이 풀어지듯 사람들이 자기 자리들을 찾아가고,

장수를 상징하는 국수처럼 모두 그렇게 긴 행복을 기원하게 된다.

2007년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으로 이미 많이 알려졌던 영화,

그런데 그보다 훨씬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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