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4.물날. 흐림

조회 수 1011 추천 수 0 2015.02.12 08:08:11


겨울은 내내 땔감을 마련하는 시간.

날 좋을 때 미리 하지 싶지만

그런 시간들이라고 어디 아니 하겠는가.

농한기이니 손이 더 가는 게지.

소사아저씨는 날마다 쉬엄쉬엄 뒤란 너머에서

태풍에 넘어졌던 나무 잔재들을 낚시꾼처럼 건져 올리고 계신다.


내가 말을 해야만 하는 처절한 이유가 있어,

늘 우리들을 웃기는 말 잘하는 친구 하나가 말했다.

우리들을 몇 시간씩 웃기던 그는 어느 때부터 행사에 불려 다니더니

나중엔 그걸로 직업을 삼았다.

“여러 시간 열심히 웃기면 다들 웃고 넘어지잖아.

여자들도 너무 좋아해.

그런데 정작 마지막엔, 여태 한 마디도 안 하고 섰는 미꿈한 저 사람 누구냐, 묻는 거야.

그거 알아? 그는 말 안 해도 돼. 왜? 잘 생겼으니까.

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거야. 아니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으니까. 말이라도 해야...”

우리를 웃기자고 시작한 말에 같이 또 까르르 웃다가

문득 자조처럼 그런 생각 들었네.

나도 가끔 잘난 체를 하지. 뭐, 실제 그런 내용이라서기보다 아이들 웃기자고 더.

잘난 체를 하는 이유는 잘 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

잘난 체는 잘난 체를 해야만 그나마 좀 나아질 수 있는 그 처절한 이유 때문에 하는 거야.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 그만 이해가 돼 버리는 거다.

누군가 잘난 체 하면 곱게 봐지지 않더니 말이다.


교육 관련 책 하나를 읽고 있는데

저 유명한 <월든>의 소로우가 열었던 지역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1837년 하버드대를 갓 졸업한 소로우가 고향에 돌아와

콩코드 공립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그의 교육방식이 너무 자유롭다며 애들을 패서라도 가르치라는 항의에

2주 후에 때려친다.(이때는 정말 그만두는 게 아니라 ‘때려’치다 표현해야만 하는)

그리고 1838년 가을 형 존과 함께 어린 시절 다녔던 사설학원 건물을 빌려 학교를 연다,

톨스토이가 고향에 열었던 학교처럼.

월든에서든가 그런 구절이 있었다.

‘국가가 정치적으로 보장하는 자유란

인간의 존엄성에 걸맞은 자유, 곧 자신의 의지대로 살 자유에 비하면 하찮을 뿐이다.’

<Teale, The Thoughts of Thoreau, 239>에서는 그런 말도 했더라지.

‘도대체 교육이 하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교육은 자유로이 굽이쳐 흐르는 냇물을 똑바로 뻗은 도랑으로 만들 따름이다.’

소로우의 학교는 기존 교육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이듬해에는 최대 인원이 입학했다.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지 않으려 노력하며 격식 없는 이야기로 하루를 열고,

아이들은 자연, 아름다움, 이 땅에 맨 처음 살았던 원주민, 계절의 순환,

경이로운 우주 같은 주제에 늘 빠져들었다’고 한다.

‘건물 창문은 환기를 하느라 활짝 열려 있었고,

당시 반복과 암기에 의존해 배우는 것보다 일하며 배우는 게 가치 있다고 강조해서

읍내로 나가는 현장체험학습이 잦았고

금요일이면 수업을 멈추고 학생 25명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숲과 들판을 거닐고 강에서 배를 타거나 근처 호수에서 수영도 즐겼다’고.

<작은 아씨들>의 루이자 메리 올컷 Louisa Mary Alcott 자매도 그 아이들 가운데 하나였다지.

형 존이 결핵에 걸리지 않았다면 3년 만에 문을 닫았던 학교는 더 오래 갔을 것이다.


나는 요새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것이 저 세월호 이후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보며

별꼴을 다보고 사는군,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삶이 고단하다는 느낌에서 온 건지

인간사에 대한 연민인지

정말 너무 오랜 시간 때문에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에서 사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에 동의하는 감정이 까닭 하나인 건 맞는 듯하다.

당신이 피로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런데, 때론 그 이유보다 ‘피로’에 방점을 찍고 그것을 걷어내기 위해 뭔가 해보기로.

자, 기지개 펴고 어깨 돌리고 허리운동!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3914 2015. 1.29~30.나무~쇠날. 눈 날리다 옥영경 2015-02-26 736
3913 2015. 1.28.물날. 눈 흩날리는 한낮 옥영경 2015-02-25 721
3912 2015. 1.27.불날. 구름 옥영경 2015-02-25 789
3911 2015. 1.26.달날. 비 옥영경 2015-02-25 788
3910 2015. 1.25.해날. 흐리다 비 옥영경 2015-02-24 662
3909 2015. 1.23~24.쇠~흙날. 비 부슬거리고 이튿날도 흐렸다 옥영경 2015-02-24 766
3908 2015. 1.22.나무날. 눈 몰아치다 비로 옥영경 2015-02-24 667
3907 2015. 1.20~21.불~물날. 맑고, 이튿날 흐리다 비 옥영경 2015-02-23 668
3906 2015. 1.19.달날. 흐리다 눈 날리는 옥영경 2015-02-13 665
3905 2015. 1.18.해날. 밤 눈 옥영경 2015-02-13 727
3904 2015. 1.17.흙날. 갬 옥영경 2015-02-13 715
3903 2015. 1.16.쇠날. 저녁 비 옥영경 2015-02-13 663
3902 2015. 1.1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5-02-13 665
» 2015. 1.14.물날. 흐림 옥영경 2015-02-12 1011
3900 2015. 1.13.불날. 오후 흐림 옥영경 2015-01-30 690
3899 2015. 1.12.달날. 맑음 옥영경 2015-01-30 719
3898 2015. 1.11.해날. 맑음 옥영경 2015-01-30 665
3897 2015. 1.10.흙날. 눈싸라기 마당에 아직 남은 흐린 날 옥영경 2015-01-30 704
3896 2014학년도 겨울, 159 계자(2015.1.4~9) 갈무리글 옥영경 2015-01-14 1309
3895 159 계자 닫는 날, 2015. 1. 9.쇠날. 눈싸라기 옥영경 2015-01-14 87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