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이는 밤입니다.

닭장 안을 치웠습니다.

부엌에는 두 개의 음식물 찌꺼기 통이 있는데,

하나는 익혀진 것, 다른 하나는 날 것.

앞은 개에게, 나머지는 거름장으로 혹은 닭에게 갑니다.

그런데 날 것 통은 그 분류가 세밀하지 않아

자주 닭장 안이 음식물 쓰레기 더미가 되고는 하지요.

닭똥도 한 쪽으로 긁어내 거름으로 쓰기 위해 준비합니다.


얼마 전 아이 하나 다녀갔습니다.

벌써 대학생이 되었지요.

그런데 성형을 하고 왔네요.

대학입시를 끝내고 성형외과에 가는 아이들이 흔합니다.

성형외과에 가는 고교생들을 보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방학은 좋은 시간이지요.

이 사회는 어떻게 성형 권하는 사회가 된 것일까요.

우리 마음속에는 어찌하여 늘 '뚱녀'가 살게 된 것일까요.


<예쁜 여자 만들기: 미인 강박의 문화사, 한국에서 미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영아/푸른역사, 2011)

<육체의 탄생: 몸 그 안에 새겨진 근대의 자국>(민음사, 2008)의 연장?

현대사회에서의 몸짱에 대한 과도한 열의는

육체를 물질화해서 바라보는 근대의 시각에서 비롯되었다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유행에 민감하게 된 것은

서양문명의 유입과 언론매체 탄생 이후부터였다는 것.

근대 국가, 자본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단순히 유교적, 윤리적 질서를 체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적인 목적으로 옷에 신경을 쓰고,

기능상의 이유가 아닌 미관상 성형수술이 이뤄지게 됩니다.

결국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광이 일종의 '개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 말합니다.

'예뻐져야 한다'는 여성의 강박은

'개화가 되어야 한다'는 문명화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됐다는 거지요.

물론 아주 옛날부터도 그러했겠지만 근대라는 시대에서 두드러진 현상.

여자들이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그것도 1920년대 일제강점기를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 나라를 미개국이라고 알리고자 하는 일본의 각본에 의해서,

또 출산 장려를 위해, 때로는 출산 억제를 위해,

건강해야 한다고 했다가, 사치로 치부하기도 하면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들 입맛대로 필요할 때만 휘두르는 권력에 의해서,

짧아지는 치마에 말세라고 입으로는 한탄하며 눈은 그 여성들의 다리를 쫓는 남자들에 의해서,

여성들이 예뻐지고자 하는 마음은 점점 노출을 더해가며 시각화 되었습니다.

나라와 남자들의 잣대에 의해 권해지던 예쁜 여자는

이제는 여성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예쁜 여자’가 되어가지요.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예쁘면 입사도 쉽고,

예쁘면 결혼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미' 자체가 경쟁력이고 상품인 시대에 더욱.


그래서 어쩌자는 말일까요,

어째야 한다는 걸까요.

길쭉하고 날씬하고 눈이 크고 코가 오똑하고...

저자는 이런 일원화된 미적 기준이 아닌 다원화된 미적 기준을 가져야한다며

'장미란' 역도 선수를 예로 듭니다.

늘씬하고 예쁜 몸매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게으르거나 무능력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이루어내는 성취감과 숭고함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처럼

고착화된 미적 기준들을 넘어 그것을 다원화시켜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고 합니다.

모든 여성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연대하여 천천히 '변형'을 유도하고 '균열'을 만들기,

하여 ‘n개의 아름다움’을!

이 책 최고의 미덕은 여기 있는 듯.


그런데 말입니다, 산골 사는 제 글로벌하지 못한 눈은

스무 살은 스무 살의 젊음으로 빛나는 아름다움이,

예순은 예순의 세월이 담긴 아름다움이 눈부십디다요.

그래서 글로벌하지 못한?

하기야 웬만하면 성형하지 말지 싶다가도

성형으로 자신감이 생긴 예를 보면 그걸 말릴 일도 아닌.

(그런데, 그걸 또 정녕 '자존감'이라 하기는 또 망설여지는...

 뭐 어째도 자본에 대한 저항이 쉽지 않은 줄 아는 데서 오는 쩝쩝거림이겠습니다.)


위를 좀 앓고 있습니다, 며칠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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