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하다.

풀들이 땅을 박차고 오른다.

틈만 나면 연탄재를 깨고 있다.

많을 땐 스물 댓 장씩 나오는 탄이다.

개 장순이와 만화의 똥들도 치운다.

며칠째 위를 앓다 결국 한방 양방으로 다 진단을 받기도.

같이 수행모임을 하시는 분이 역류성 식도염 한방약을 나눠주기도 하셨다.

이제 약으로 다스리며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자유학기제 관련 자료들도 모으고 있다.

나아가 이달 말에 보낼 자유학기제 기획서 초안을 잡고 있는 중.


오는 신문도 안 보는 생활이다.

거의 언론끊기 수준.

가끔 벗이 보내오는 칼럼들을 읽고는 한다.

오늘은 박노자의 칼럼이 닿았다; ‘능력’이라는 이름의 허구

어제 자 신문이었다.


이색 사회로 가면 우리는 늘 그 이데올로기적 표현에 놀라는데,

북한의 문화도 우리에게 그러하다.

그러나 외부자 입장에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들이지만

내부자들에게는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당연한 ‘상식’으로 보인다.

과연 대한민국의 통상적 이데올로기는 어떠한가, 덜 잔혹한가.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부터 학교에서 우반, 열반으로 편성해 대개는 어려운 집안 환경에 문화자본이 부족한 아이들의 자존심을 어릴 때부터 짓밟으면서 미래의 승자들을 따로 키우는 것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볼 때 무엇에 해당하는가? 맞다. 교육 파행이며 반교육적인 심적 아동학대다. 그렇다면 북한인들이 지도자 사진을 극진히 모시는 것을 당연시하듯 우리가 이런 잔혹 행위를 당연시하는 이유는 ‘능력·능률’이라는 이름의 우리들의 체질화된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모든 지배이데올로기들처럼 능력주의는 사실상 그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

“대다수가 스트레스, 열등감, 자책을 안고 불안 속에서 떨어야 하는 사회는 단기수익을 더 올릴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침몰로 간다. 인간의 진정한 능력은 남들과의 경쟁적 비교가 아닌 남들과의 연대, 그리고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창성으로부터 비롯된다. 획일적 ‘성적순’으로 재단되는 ‘실력’의 저주에서 벗어나 남들과 연대하면서 자기만의 길로 가는 것만이 인간이 살길이다!”


정희진의 글도 왔다; 그들은 저항했다

닷새 전의 한 신문의 칼럼이었다.


얼마 전 주차 알바생을 무릎 꿇리며 갑질논란의 중심에 섰던 백화점모녀사건.

그에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트위터,

“백화점 알바생 3명이나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하루 일당 못 받을 각오로 당당히 부당함에 맞설 패기도 없는 젊음. 가난할수록 비굴하지 말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

이어진 한겨레의 보도,

“저항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며 당시 상황을 기록, 고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패기 없음’을 지적하기보다 함께 있었는지 돌아볼 일”

그리고, 몇 젊은이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1)알바들이 저항 잘한 거 아냐? 저항이 뭔데? 저항했다가 회사에 찍히는 거? 그게 저항이냐? 손해지! 2)참은 걔들이 잘한 거지. 당하는 장면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게 저항이지. 합의금이라도 받아야지. 3)저항한답시고 여자들에게 뭐라고 해봐라. 피해자가 가해자 된다니까. 4)지들은 금 수저 물고 태어나서, 없는 사람한테 “저항하라”는 인간들이 갑보다 더 재수 없어.”

마지막으로 칼럼은 저항이 무엇이냐 물었다.

“저항이란 무엇일까. 이기는 것인가. 인간다운 것인가. 정의인가? 단도직입적으로 약자가 저항하면 이익을 보는가. 아니면 약자는 도덕적이어야 하므로 이익보다 대의를 추구해야 하는가. 윤리적, 사법적, 문화적 차원에서 저항의 개념은 모두 다르다. 이 불일치 때문에 피해자들은 저항하면 할수록 2차, 3차 피해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약자들이 저항할 줄 몰라서 저항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저항하면 더 큰 피해가 있기 때문이다.

저항해서 자존감이 회복되거나 실질적 보상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저항 과정의 사소한 문제가 가해의 본질보다 더 문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질’은 하지 않지만 ‘있는 자’들은 이 억울함을 모른다. 없는 이들의 저항은 폭력으로 간주된다. 사회불안 조장세력이 되거나 허수아비 취급을 받으면서 누가 시켰느냐며 배후를 조사받는다. 가해와 피해의 상황은 사라지고 양비론에 사생활까지 파헤쳐진다. 나는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상담하면서 이런 경우를 무수히 보았다. 저항해도, 저항하지 않아도 비난 받는다. 부정의는 끝이 없다. 유명 진보 인사나 ‘강남 좌파’가 저항하면 명예든 실질적 힘이든 얻을 확률이 있지만, 민초가 저항하면 박수보다 뭉개진 억장(臆腸, 가슴과 창자)에 다시 억장(億丈)이 덮친다. “저항하지 않았다”는 누구의 시각인가? 그들은 저항했다.”


그래, 꾸역꾸역 사는 일도 이 시대에 대한 저항이겠다는 생각.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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