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눈이 몰아치고 있었다. 굵지는 않았다.

손바느질로 짓고 있던 옷을 잡았다.

머리는 자유학기제 기획서에 있고.


정오를 지나며 눈은 비로 변해갔다.

닭장 안에 굴뚝새들이 닭 모이를 탐내고 있었다.

여름에 산속에 살던 그들이 겨울이면 이리 마을로 내려온다.

찬바람에도 푹한 내음이 묻어있다.

소사아저씨는 그것을 포근한 찬바람이라 일컬었다.


이 달이 끝에 이를 때까지 토굴수행키로.

해마다 해오던 단식수행 대신쯤 될.

그냥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산속에서 지낸다는 의미가 클.

원래는 계자를 끝내고 정리를 좀 하고 난 뒤

달골 뒤란 어디메 토굴에 들리라 했던 일정이 그리 되었다.

다만 사람을 맞지 않고 명상하겠다.

누리집과 메일은 열어두고.

전화기에 남겨진 음성에도, 손전화 문자에도 답할 수 있겠다.

일상적인 움직임이 아주 다를 건 아니겠으나

약속하지 않은 방문객은 만나기가 어려울 것.

2월 1일 이후 뵙기로. 그날 이후 오시라.

그리고, 고등부 위탁교육.

한 달을 의뢰해왔으나 한 주만 자리를 내기로.

2월 8일부터 13일까지.


노래도 영화도 복고열풍이란다.

과거...

과거는 자주, 아니 늘 미화된다. 이미 지난 것이니까 어찌 주물럭거려도 된다.

고통조차도 그것은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아니다. 이미 지났다.

과거는 이미 나를 스쳐갔고 하여 내게서 멀지만

한편 언제든 꺼내볼 수 있기에 가깝다.

과거는 내 것이되 내가 가진 것들을 책임져야 하는 다른 것들과는 다르다.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이것이야말로 과거가 지난 매력 중의 매력 아닐지. 힘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과거를 경계해야 할 까닭.

지가 지 꺼 누린다는데, 지나버린 과거를 향유한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까지야...

그러나 과거 숭고화가 타인에게 강요된다면,

그건 좀 다른 문제이다,

강요, 나아가 그 폭력을 확대재생산한다면.


그런데, ‘과거’, 이건 좀 빗겨간 이야기인데,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포착하는가 말이다.

줄리언 반즈의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떠올랐네.

과거 탐색의 알찬 모범적 실행이라는.

그렇다. 우리는 과거를 어떤 식으로도 완벽하게 포착할 수 없다.

소설에서처럼 과거는 알아갈수록 도리어 오리무중에 빠진다.

그런데, 통념을 경계하려면

역설적이게도 또한 플로베르를 따라 통념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다시 읽어봐야겠는.

같이 읽으면 즐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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