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6.달날. 비

조회 수 787 추천 수 0 2015.02.25 04:00:33


는개비 안개비 이슬비 보슬비 부슬비... 그랬다.

수행하기 좋았다.


메일들에 답.

문자도 전화도 메일도 모다 몰아서 하고 있다. 뭐 대체로 늘 그렇다.

게을러서도 그렇고 이곳 일의 사정이 그런 면도 있지만,

즉자적인 반응과 즉자적인 삶에 대한 경계쯤으로 해석되길.

159 계자를 다녀간 샘들의 평가글이 성실하게들 닿았다.

고맙다. 애썼다. 사랑한다. 물꼬는 늘 여기 있노니.


멀리 캄보디아에서 글월이 하나 왔다.

10학년 아이이다.

먼 곳에서 글을 쓰고 먼 곳에서 받는다.

고맙다. 사랑한다.


지난번 벗이 와서 마주앉아 같이 화장지심으로 꽃을 만들었다.

그 꽃에 리본 달아 가마솥방 창에 걸었네.

문살 같다. 곱다. 그니를 생각한다.

이제 옷걸이(세탁소에서 주는)들로 모빌을 만들어볼까 한다.

서울 걸음에 어느 아파트를 지나다 버리러 가던 이에게 얻어왔다.

열린교실(샘들이 강좌를 열면 아이들이 수강신청을 하는)에서 ‘다시쓰기’를 해도 좋으리.


한자가 별로 중요치 않게 여겨지던 한 때가 있었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과목이 폐지되기도 했지, 아마.

그 언저리에 학교를 다녔다.

소홀했다.(공부 안했다는 완곡한 표현)

안면이 있어 더러 읽을 수는 있어도 쓰는 건 제대로 글자가 되지 못했다.

맥락 속에서 읽으면 아주 모르는 글자도 대략 읽힐 수 있으니 그리 불편치도 않았다.

국문학과 다닙네 했지만 고전문학엔 문외한에 가까웠다.

한글로 씌어있으니 한글로 한자를 익혔던 셈.

그런데, 헤겔의 책 하나를 통독하며 공부하는 세미나가 있었는데,

이게 한글도 없는 한자가 초저녁 개구리들 울음마냥 몰려 있던 책.

선배 축이었는데, 당혹스러웠지.

미리 읽고 옥편 찾아 확인해서 그 시간들을 지났다.

짐작컨대 미리 읽지 못한 날은 밍기적거리며 늦게 갔거나 안 갔을지도 모를.

그런데, 다행히 한글세대 어쩌구 하게 되니 한자를 아니 쓰고도 크게 불편은 없었으나

한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보니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우주다.

언어라기보다 철학이라 불러야 옳은.

“왜냐하면...”

한 벗과 그런 이야기 나누는데,

막 나왔다는 책 한 권을 소개해주었다.


<한자의 탄생>(탕누어/김영사)

수백만 년간 짐승처럼 떠돌아다니던 인류는 불과 수천 년 사이에 급속한 문명을 이룩했다.

<슬픈열대>의 레비스트로스는 이를 ‘신석기 시대의 모순’이라고 불렀고,

대만의 전방위 문화비평가 탕누어는 이 발전의 중심에 문자가 있었다고 본다.

“문자가 생겨남으로써 인류의 사유와 표현은 시간의 독재에서 벗어나 순간적으로 공기 속으로 흩어지지 않으면서 축적되기 시작하고, 점차 두께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 문자’가 아닌 각각 뜻을 품은 ‘표의 문자’인 한자가

정보화 사회 변화에 둔감하고 표기에도 어려워 위기라지만

이 한자에 엄청난 인문학적 가치와 지혜가 숨겨져 있단다.

광활한 중국이 지리적, 언어적, 민족적 한계를 넘어 단일한 문화로 엮일 수 있었던 건

바로 한자라는 단일한 문자 시스템 때문이라고.

1899년 발견되기 시작한 상나라 때 갑골문자에서 확인된 5000여자 가운데

해석 가능한 1000여자의 도상을 기초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별 한자에 담긴 역사 문학 고고학, 사회학적 의미를 추론.

그 상상력이 때로 신화적이고 또 문학적.

예컨대,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아침 단(旦) 자

“동해의 바닷가에 오래 거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글자이거나,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해가 뜰 무렵 바닷가에 서 있다가 더없이 찬란한 일출의 광경에 마음을 잃고서, 이 모습이야말로 죽음 같은 긴 밤이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날이 다가오고 있는 기쁘고 아름다운 순간을 나타내는 도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끔찍한 고대사회의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젓갈을 말하는 醢(육장 해).

큰 절구 안에 절망적인 표정의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갑골문.

두 손으로 절굿공이를 든 이가 산 채로 사람을 내리쳐 육장(肉醬)을 만드는 상황.

기(棄) 자에는 두 손으로 삼태기를 들고 갓 태어난 아이를 내다버리는 모습을 그린,

그러니까 먹고살기 힘든 데다가 가족계획도 마땅치 않았던 시대 영아 살해의 흔적.

그렇단다.

덕분에 한자 책 하나 책상에 당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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