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9.달날. 눈발 잠시

조회 수 690 추천 수 0 2015.03.11 10:31:38


영하 13도의 새벽.

그래도 어제 거칠게 불던 바람 멎으니 그리 춥게 느껴지진 않는다.


위탁교육 이틀째.

아침 해건지기. 늦은 아침이었다.

아이는 전통수련과 티베트대배 백배와 명상을 고스란히 따랐다.

낮 1시에야 일어나던 11학년 아이는 위탁교육기간동안

가장 큰일이 그 잠과 씨름하는 일이 될 것이다.

1시간 혹은 30분씩 당겨내기.


“이런 학교 왜 만들었어요?”

물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굳이 먼저 안내할 필요 없이

상담 시간에 아이가 그리 물어왔다.

그런 질문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물꼬는 왜 존재하는가.

아이는 오랫동안 제도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너네)학교에서는 왜 그리 말을 안 듣냐?”

“안 듣게 하잖아요.”

“너 내 말은 잘 듣잖아.”

“저를 이해해주시는 것 같애서요.”

이해라...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테다,

많은 아이들이고 보면, 그것이 제도 안이고 보면.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받아내는 방식을 조금만 바꿀 수 있다면

드러나는 양상도 달라지지 않겠는지.

하기야 남의 일은 이리 말하기 쉬울지니.


함께 일했다.

바깥수돗가에 패인 곳들에 연탄재를 깨고 부수고 깔기.

눈발이 조금 날렸다.

그리고 11학년 아이는 공을 찼고, 책을 읽었다.

절대로 안 본다는 책이더니, 여기서는 별반 할 일이 없으므로.

친구만 있으면 여기도 지낼 만하겠다는 아이다.

그런데 그 친구 없이 지내보는 시간이 또 필요한 그이다.

한주를 보내고 그에겐 무엇이 남을지.


소사아저씨도 장날이라고 읍내 나들이를 다녀오시고,

그 버스로 연규샘과 서인샘도 들어왔다.

아이들은 설거지를 나눠했고,

저녁엔 그림명상을 같이 했다.

우리 안에 있던 색깔들이 종이 위로 쏟아졌다.


밤, 이웃마을 노부부 잠시 다녀가셨다.

명절 즈음이면 선물을 들고 그리 인사를 넣는다.

아이 하나를 위해 온 마을이 움직이듯

11학년 이 아이를 위해 온 기온이 움직이고 있다.

사랑이 많은 아이다.

저도 그렇고, 저를 둘러싼 흐름도 그러하다.

이보다 더한 것이 무에 있으랴.

고맙다.

사랑 안에서 마음 좋게 지내다 가면 딱히 예서 뭘 하지 않아도 충분한 덕이겠는.

어느 한 때 다사로웠음이 치유이리.


한밤엔 노닐었다.

밤참을 놓고 꼬리에 꼬리를 달며 놀았다.

깊고 검은 겨울밤 속에서

젊음은 싱그러움으로 빛났고,

노회함은 지혜로 빛났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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