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10.불날. 맑음

조회 수 669 추천 수 0 2015.03.11 10:33:50


“(저희도)대배도 해야 해요?”

“그럼, 우리 둘만 하랴? 의리가 있지...”

그렇게 서인샘 연규샘까지 해건지기에 동행한 아침.

그대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 나는 그대들을 위해 할지니.

내 생이 무슨 복이 있어 이리 타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니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일지라.

낮1시까지 자던 11학년 아이는 그렇게 아침을 9시에 열었다.


민주지산.

아이들과 겨울마다 여러 차례 산에 들어도,

여름이면 민주지산에 몇 차례 들어도,

이즈음에 민주지산 오르기는 또 처음이다,

민주지산 아래 깃든 게 1996년 가을,

아주 들어와 산 걸로 쳐도 십 수 년이 지났는데.

들머리부터 꽝꽝 언 눈길.

아이젠도 없이 미끌대며 오르기 시작.

그런 길이라면 내려오기가 더 힘든.


유쾌한 산길이었다.

겨울산은,

언 계곡 아래 돌돌거리는 물소리가 때로 새소리처럼 지저귀었고,

녹아 흐르는 곳 휘도는 물은 손대면 따뜻하기라도 할 것 같은 온천마냥 김오르겠더라.

얕은 천은 얼어 물이 흘렀던 때 있었던가 싶게 두텁게 얼었고.


우리는 정상은 아니었어도 바위 하나에 깃발을 꽂았노니.

내려오는 길은 바람이 사나웠다.

날도 흐려가고.


아이들과 산을 내려와 목을 축이기도 하고 하산주를 마시기도 하는 가게에서

모여 앉아 곡기를 좀 채우고 도란거렸다.

사다리도 탔더랬네.


낮 4시, 물꼬에 들어서자마자 바느질을 위해 조각천을 자르는 동안

연규샘은 떡꼬치를 만들어 간식으로 냈다.

저녁버스를 타고 샘들이 돌아갔고,

11학년 아이랑 그림명상을 하고 날적이를 쓰고,

아이는 밤 9시부터 11시까지 쓴 전화기를 반납하고 잠자리로 갔다.

전화기를 놓는 일, 그에게 그 일이야말로 이곳에서 가장 어려운 게 아닐는지.

위탁교육 사흘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1814 2019. 3.22.쇠날. 맑음 / 두 곳의 작업현장, 아침뜨樂과 햇발동 옥영경 2019-04-04 2783
1813 2019. 3.23.흙날. 봄눈 옥영경 2019-04-04 750
1812 2019. 3.24.해날. 맑음 옥영경 2019-04-04 794
1811 2019. 3.25.달날. 맑음 옥영경 2019-04-04 813
1810 2019. 3.26.불날. 맑음 / 한 달, 햇발동 1층 보일러 공사 옥영경 2019-04-04 910
1809 2019. 3.27.물날. 맑음, 바람 많은 / 책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 옥영경 2019-04-05 851
1808 2019. 3.28.나무날. 맑음 /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책, <팬티 바르게 개는 법>) 옥영경 2019-04-19 816
1807 2019. 3.29.쇠날. 밤비 / 종로 전옥서 터 전봉준 동상 옥영경 2019-04-19 863
1806 2019. 3.30.흙날. 우박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옥영경 2019-04-22 727
1805 2019. 3.31.해날. 흐림 옥영경 2019-05-02 686
1804 2019. 4. 1.달날. 맑음 / 운동장 고무매트 옥영경 2019-05-02 815
1803 2019. 4. 2.불날. 맑음 옥영경 2019-05-07 817
1802 2019. 4. 3.물날. 맑음 / 아비의 마음 옥영경 2019-05-07 687
1801 2019. 4. 4.나무날. 맑음. 조금 오른 기온 옥영경 2019-05-07 690
1800 2019. 4. 5.쇠날. 맑음 옥영경 2019-05-07 748
1799 2019. 4. 6.흙날. 맑음 옥영경 2019-05-07 792
1798 2019. 4. 7.해날. 흐림, 일하기 좋은 옥영경 2019-05-07 785
1797 2019. 4. 8.달날. 맑음 / 빨랫돌 옥영경 2019-05-07 847
1796 2019. 4. 9.불날. 낮 3시부터 비바람, 밤새 쉬지 않고 내리는 비 / 정수기 옥영경 2019-05-12 761
1795 2019. 4.10.물날. 비바람, 간간이 비 흩뿌리고 옥영경 2019-05-12 78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