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10.불날. 맑음

조회 수 675 추천 수 0 2015.03.11 10:33:50


“(저희도)대배도 해야 해요?”

“그럼, 우리 둘만 하랴? 의리가 있지...”

그렇게 서인샘 연규샘까지 해건지기에 동행한 아침.

그대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 나는 그대들을 위해 할지니.

내 생이 무슨 복이 있어 이리 타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니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일지라.

낮1시까지 자던 11학년 아이는 그렇게 아침을 9시에 열었다.


민주지산.

아이들과 겨울마다 여러 차례 산에 들어도,

여름이면 민주지산에 몇 차례 들어도,

이즈음에 민주지산 오르기는 또 처음이다,

민주지산 아래 깃든 게 1996년 가을,

아주 들어와 산 걸로 쳐도 십 수 년이 지났는데.

들머리부터 꽝꽝 언 눈길.

아이젠도 없이 미끌대며 오르기 시작.

그런 길이라면 내려오기가 더 힘든.


유쾌한 산길이었다.

겨울산은,

언 계곡 아래 돌돌거리는 물소리가 때로 새소리처럼 지저귀었고,

녹아 흐르는 곳 휘도는 물은 손대면 따뜻하기라도 할 것 같은 온천마냥 김오르겠더라.

얕은 천은 얼어 물이 흘렀던 때 있었던가 싶게 두텁게 얼었고.


우리는 정상은 아니었어도 바위 하나에 깃발을 꽂았노니.

내려오는 길은 바람이 사나웠다.

날도 흐려가고.


아이들과 산을 내려와 목을 축이기도 하고 하산주를 마시기도 하는 가게에서

모여 앉아 곡기를 좀 채우고 도란거렸다.

사다리도 탔더랬네.


낮 4시, 물꼬에 들어서자마자 바느질을 위해 조각천을 자르는 동안

연규샘은 떡꼬치를 만들어 간식으로 냈다.

저녁버스를 타고 샘들이 돌아갔고,

11학년 아이랑 그림명상을 하고 날적이를 쓰고,

아이는 밤 9시부터 11시까지 쓴 전화기를 반납하고 잠자리로 갔다.

전화기를 놓는 일, 그에게 그 일이야말로 이곳에서 가장 어려운 게 아닐는지.

위탁교육 사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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