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같은.
11학년 아이랑 찻자리에 동행하기로 한 날.
산을 내려가서 볼 일들을 줄줄이 챙겨
면사무소에서부터 농협이며 시장이며 들리고
차를 내고 있는 스님이며 어른신들 자리에 함께 앉았다.
지산 보이차 복수산이 있었다.
모인 어른들이 오직 한 아이를 위해 묻고 대답하며 다정다감을 나누었다.
나오면서 아이가 말했다,
친구들이 술 마실 때 차를 마시면 좋겠어요.
“물 빠지는 그거 뭐라 그래요?”
“다반 혹은 다탁, 차탁, 뭐 그러지. 설해라고도 할 걸.”
“비싸요?”
“천차만별일 걸.”
다녀와 같이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했네.
하하, 아이에게 당구도 배웠다.
너는 내게 무엇을 나눠주겠느뇨 했더니 당구를 가르쳐준다고 했다.
“어어! 공부 좀 하셨나 보네요.”
그게 말이다, 각도를 좀 계산해야 하더라고.
하지만 우리 뜻대로 가지 않는 생처럼 공이 어디 생각대로 꼭 가냐고.
뭐, 재미는 있더라. 아무렴, 시험이 아니니.
아이가 말했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마음이 짠했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돼서.
“그러면 다시 태어날 때 어떤 것이 달라졌으면 좋겠는데?”
“공부도 잘하고 싶고,
친구들도... 착한 친구들로 바꾸고 싶고...”
그러나 우리는 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렇다고 길이 없다면 생이 얼마나 암흑일 것인가.
같이 길 찾기, 이곳에 있는 시간이 그런 셈일 것.
할 수 있는 것 찾아보기 말이다.
밤, 그림명상을 하다가,
“너는 빨랑 집에 가고 싶어 하는데,
나는 너랑 이리 살았으면 딱 좋겠는 걸.”
그렇다.
행복은 해야 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때 느껴지는 감정입니다,
행복을 정의한 어느 구절이 그러하였더라.
그렇군. 그러면 지금 이것이 행복이겠네.
나날이 순조로워서 무엇 하나 더 바랄 게 없다.
아희들아, 너희들의 날도 그러했으면...
위탁교육 나흘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