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13.쇠날. 맑음

조회 수 722 추천 수 0 2015.03.13 11:13:41


어제 그토록 골짝을 할퀴던 바람이 순순해졌다.

8시 해건지기 하기로 한 시간.

그런데 어제 종일 바람 부는 밭에 나갔던 터라 곤하기 얼마나 더하려나 싶어,

더하여 이제 그 마지막(위탁교육) 시간에 이르렀는데 하고,

눈이 뜨일 때까지 이부자리에 있거라며 기다렸다.

9시가 넘자 문을 열고 나온 11학년.

“아까 깼는데요...”

전화기도 내놓고 시계도 없는 방이었으니...

장허다. 촘촘한 산골살이 일정을 끝까지 잘 밀고 온 아이.


달골을 다녀온다.

아침산책이기도 하고 물꼬 안내이기도 하고 다른 날에 대한 기약이기도 하고.

느긋이 아침을 먹고 가마솥방이며 부엌을 치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그것처럼

그동안의 시간을 그리 정리한다.

“제가 고추장집도 치우고 올까요?”

부엌 선반을 아직 닦고 있으니 아이가 그런다.

“응, 나도 곧 올라갈게.”

고추장집을 치워내고,

그간 쓴 된장집 욕실 바닥도 솔질.

“제가 할게요.”

박박 힘 좋게 하더라.


그리고 갈무리 나눔.

위탁교육 끝!

이전과 구별짓는 한 때가 될 수 있었을 거나...


그런 날이 있다,. 이전과는 다른 날, 이전의 나랑은 다른 내가 서 있는 날.

1965년 1월 1일이 가브리엘에게 그랬고,

주인공의 40년이 넘는 기나긴 사랑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오래오래>/에릭 오르세나/열린책들, 2012)


p.21

그런데 병적인 상상력이 빚어낸 허깨비였을까. 그날 1965년 1월 1일 아침에는 파리가 반은 기차역처럼 보이고 반은 항구처럼 보였다. 보도는 플랫폼이나 부두로 바뀌었고, 행인들은 여행객으로 바뀌어 모두 어딘가로 멀리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식물원 근처 린네 거리에서 종종걸음을 치던 여인은 빵을 사러 간다는 핑계로 가정을 떠나는 것이지 싶었다. 조금 뒤 조프루아 생틸레르 거리에서 본 낡은 도핀 택시는 트렁크나 그 안에 들어있는 여행 가방을 열어보지 않다도 남쪽으로 아주 도망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또 식물원 앞 퀴비에 분수에 기대어 <르 파리지앵 리베레>의 구인란을 읽고 있던 거지는 어떤가? 술에 취해 사는 밑바닥 인생을 더 견딜 수 없어서 이튿날 당장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그가 왜 신문을 읽으며 머리를 주억거리고 있었겠는가? 라세페드 병원의 8층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 하얀 실루엣은 또 어떤가? 그건 고통에 지친 나머지 끔찍한 열두 달을 다시 사느니 그날 어둠이 내리기 전에 허공에 몸을 던지기로 결심한 환자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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