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25.물날. 흐림

조회 수 731 추천 수 0 2015.03.19 23:54:02



태극권 때문에 사람을 만날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아이를 낳은 그 중국 여자 분,

“저희 시어머니랑 동갑이신데...” 한다.

모자를 쓰고 다니니 흰머리가 보이지 않았던 것.

시간은 무섭게 우리를 그리 초잠식지한다.

책 모서리만 개먹어 너덜너덜한 게 아니라

사람도 그렇구나 싶다.

그런데, 그것은 공포가 아니다!

세월을 더해가는 건 아름다운 일.

... 그리고 이문재 시인의 ‘생일’을 생각했네.



생일 아침


미역국 받아놓고 생각느니

1959년 이래 쉰 세 해

쉰 세 번째 가을


그러고 보니

오늘 나와 함께 태어난

내 죽음도 쉰세 살

내 죽음도 쉰 세 번째 가을

어서 드시게


오늘은

꾹 참고 나를 보살펴준

내 죽음과

오붓하게 겸상하는 날

일 년 내내 잊고 지내

미안해하는 날

고마워하는 날.



시가 말에 닿는 날이었다.

에릭 오르세나의 소설 한 구절.

p.79

정말이지 온 마음을 다하여 글을 쓰다 보니, 말들에게도 꿈틀꿈틀 움직이는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 그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말들은 원래가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고질적인 방랑벽이 있고 탐욕스럽다. 게다가 말들은 조심성이 없고 요리조리 빠져 달아나면서 뒷마당을 후비고 다니는 버릇이 있다.

가브리엘은 마흔이 넘어서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배에 선구를 갖추어 멀리 띄워 보내는 배 임자와 비슷하다. 그의 배는 음절이다. 그는 소중한 보물이 있는 수평선 너머로 자기 배들을 보낸다. 누군가에게 전할 말이 없는 사람은 어딘가로 보낼 배가 없는 사람과 같다. 그의 감정은 늘 항구에 머물러 있고, 생겨나자마자 죽음을 맞으며,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막연한 의도 속에서 형체도 없이 스러진다.

요컨대, 가브리엘은 말들에 갑자기 진한 우정을 느꼈다. 그는 마치 말들이 자기의 유일한 희망인 양 그것들에 매달렸다. 이제 그의 책상에는 사전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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