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달날. 흐림

조회 수 671 추천 수 0 2015.03.29 13:08:34


수수경단을 빚는다.

“해줄라고?”

“아니... 저희 어머니가 해주시는 거 먹어보기만... 냉장고에 있는 거 그냥 들고 왔어요!”

빈들모임에 휘령샘이 가져왔던 거다.

수수가루에 고물로 쓸 카스테라까지 준비를 해왔던 것을

마련해둔 것들 먹이다보니 고대로 남았다.

만들어놓으니 여럿들 입에 간다.


3월 1일까지, 그러니까 어제까지 2014학년도 마지막일정을 하고 나서는,

3월 9일로 ‘첫걸음 예’(학기 여는 행사)를 놓고, 그러니까 2015학년도 여는 날을 잡아놓고는

벌어놓은 한 주의 첫날이다.

천천히 2015학년도 한해살이, 그러니까 학사일정을 짤 것인데,

그렇더라도 마음이 더디고 또 더디다.

우선 이 주는 목공을 좀 할 생각이다.

하면서 힘을 낸다, 그렇다.

움직이면서 생각할 것.

그런데 생각이 아주 더딜 것만 같은.


잠시 최근 아지트로 삼은 곳에 스며들었다.

아는 이가 한동안 비워둔 곳인데,

오직 홀로일 수 있는, 일상도 멀고 의무도 먼, 아무 움직임이 없어도 되는,

따뜻한 물에서 유영하는 것 같은 편함, 그냥 자신을 그냥 좀 둘 수 있다.

학사일정을 짜기 위해 아직 한 주를 고민할 시간이 있고, 몇 샘들과 의논도 오가겠지만,

아마도 2015학년도 물꼬는 그런 아지트 같은 곳의 흐름 같지 않을까 싶다.

고요하게 흐르는 물 같은, 별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자유학기제 지원센터 일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가을학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고정적인 수업을 가거나 강연을 나가거나 코디네이터로 갈 테지.

이야기가 오가는 인근 도시의 한 학교쯤 나가게 될 듯.

그러니까 일을 더 벌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이, 시간 역량도 한계이고,

다만 상징성이 크다.

뭔가 해야 할 것이란 스스로의 압박, 이제 그런 거 안 하기로 한다.

여태 그리 산 것으로 충분하다, 살날이 얼마나 많이 남았건.

조용히 살고 싶기도 하고 잊히기도 싫다던 어느 유명한 가수의 넋두리처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자백?, 마음이 일어설 때까지 그저 흘러가보기로 한다.


어쩌면 세월호를 타고 떠났던 마음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처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흘러가볼 것. 사람의 내일 일을 누가 알겠는가.

이런 식이 될 것 같다.

아직 한 주를, 좀 더 시간이 필요하면 한 달을 두고도 고민하리.

어쩌면, 송구하다.

이런 시절을 힘차게 걸어가지 못해서.

하지만 다들 그리 말하지 않았나, “옥샘, 있어만 주셔요.”.

2015학년도는 딱 그것만 하기로 한다.

한 달에 한 차례 정도의 위탁교육,

한 학기 두어 차례의 빈들모임, 여름 겨울 각 한 차례의 계자,

낡은 교사(校舍)의 물꼬 건사하기, 글쓰기, 들일하기, ...

너그러운 이해를.


한 소설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물었던 한 구절은 이러 하였더라

; <오래오래>(에릭 오르세나/열린책들, 2012).

인생은 죽는 날까지 확정되지 않는다.

우리의 내일이 어디로 갈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주인공에게 철학을 가르친 페토렐리 신부님 이야기.

p.534

...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자기 삶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는 해군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매일같이 가없는 수평선과 우수에 찬 앨버트로스들을 바라보다가 그 너머에서 신의 존재를 느꼈다. 그래서 신부가 되었다. 포커 용어를 빌리자면 <쇼 다운>. 그러니까 배팅을 끝내고 손안에 든 패를 까보기 위해서였다. 나아가서 그는 자기가 방랑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전수하기 위해 교사를 겸하였다. 그렇게 20년을 봉직하고 나자 종교적인 소명 의식이 사라졌다. 대신 한 여인에 대한 열정이 생겨났다. 그는 곧 수단을 벗고 그녀와 결혼했다. 성직자가 되어 수단을 입었다고 해서 인생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 행복이란 전적으로 어떤 행위에서 기인하는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어떤 상태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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