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14.흙날. 맑음

조회 수 671 추천 수 0 2015.04.16 17:04:52


아이가 자라니 아이로부터 받는 이해와 인정과 사랑과 존경이야말로 어떤 평가보다 크다.

아이가 말했다.

물꼬 일이 힘드니까 어머니가 물꼬 일을 그만 했으면 좋겠단다.

물꼬 일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이 끝없는 일에.

“공부는 그래도 하는 만큼 성과가 보이는데...”

그런데, 그래도 해야 하는 게 맞겠단다,

어머니의 말이 힘이 있는 건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아, 그렇겠구나.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왜 공부를 하니?”

당장 시험을 잘 치르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공부란 결국 일정 정도의 성실을 요구하는 것,

내가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더라도

공부를 한 성실의 힘은 무슨 일을 하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한단다.

아, 그렇구나.


아이에게 또 물었다.

“너는 삶의 의미가 있니?”

현재가 의미 있는가 스스로 물으니 그렇더란다.

그렇다면 현재를 가져온 과거도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가 나아가 이르는 미래도 의미가 있다,

결국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내 인생을 이루고 있는 것이더라고.

하여 현재가 의미 있어야 내 생도 의미가 있는 것 같더란다.

“그래서 지금에 충실한 거예요, 열심히 공부하는 거.”

아, 그렇구나.


그나저나 물꼬 일,

어제, 오랫동안 이 산마을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어미 일을 돕던 아이는 그랬다.

물꼬 일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그 끝없는 일.

“그래도 공부는 하면 성과가 있는데...”

그야말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의 대표경우이다.

이 많은 일을 하다 그냥 공부만 하면 되니 얼마나 수월하겠는가.


재단만 해두었다 어제 조립한 가구에 오늘 도료를 발랐다.

어제 조립할 적 호된 일을 겪었던 품앗이 하나가 소식을 넣었더니,

오늘은 아이(그래도 어느새 청년인) 하나 어려운 일을 겪고서 소식을 보냈네.

누구에게나 생이 녹록치가 않을세.

그 일을 겪으며 형편없는 자신과 마주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고.

그런데 말이다, 우리들의 그 꼬질꼬질한 면이 다른 그럴 듯한 모습을 가능하게 하는 게 아니겠느뇨.

홀로 있을 때의 내 후줄그레한 면이 있어

나가서 번듯한 내 모습이 또한 가능치 않겠느냔 말이다.

모다 나일 것, 사랑스런 나일 것.

애썼다, 무사히 지나느라.

고맙다, 잘 지나가주어.

그리고, 나는 오직 그대 편이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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