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18.물날. 비

조회 수 664 추천 수 0 2015.04.19 02:03:52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종일 내렸다.


아이가 수학여행을 갔다.

간 줄 이제야 알아차렸다.

돈 한 푼 쥐어주지 않았다.(못했다가 아니다)

아이 역시 딱히 달라는 말도 않았다.

아, 단원고 아이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면, 아, 아, 아, ...

다들 그렇게 여느 날에 이은 하루가 되리라 생각했을 게다.

싸우고 간 아침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면 안아줘야지,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아이가 이 상태로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게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들일지니.

또 눈물이 괸다.

세월호에 탄 승선원들은 한꺼번에 죽었으나 또한 개별의 죽음이다.

가끔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내가 그 나라 사람들을 개별로 보지 못하고,

일상을 살아내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그 나라 사람으로 뭉뚱그리고는 한다.

세월호를 타고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 아니라

하나하나이다,

오늘 수학여행을 간 내 아이처럼!


바깥 수업을 못한 날이었다.

나간 걸음이라 독립영화관에 가서 내리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왔다.

홍석재 감독의 <소셜 포비아>.

'SNS'가 이 사회에 드리운 그늘, 그쯤으로 소개됐더랬다.

그 그늘에 앉은 우리 사회의 몰인간화라는.

'바로 오늘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싸지른 그 댓글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온갖 배설물을 쏟고, 그것을 치대고,

그리고는 한발 물러나 상관없는 양 하는 우리 모두의 민낯.

그런데, 이 모습들이 이 시대의 폐해일까?

아니다.

마치 이 시대 문명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기계와 기술적 면으로 보이기 쉽지만,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그 모습!

그래서 더욱 소름끼친다.

극작도 연출도 연기도 풍성.


스웨덴 영화 <포스 마쥬어(불가항력); 화이트 베케이션>.

휴가를 떠난 알프스 스키장에서 눈사태를 만나고, 남편이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다.

그리고 그 도망은 나도 그럴 수 있고, 너도 그럴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비겁함이기도 하다.

하여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그런 불편함을 이 영화에서 우리는 만난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폭풍이 장면전환마다 등장해 이야기를 잘 끌고 가고,

아내와 남편의 심리적 거리를 보여주는 화면설치도 훌륭하며,

아이들이 너무 아이들이라서, 그러니까,

아이들 속에 있으면 영락없이 만나는 그런 풍경이 우리를 자주 웃긴다.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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