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21.흙날. 춘분

조회 수 1028 추천 수 0 2015.04.23 16:13:33


불가에서는 춘분 전후 일주일간을 ‘봄의 피안’이라 부른단다.

극락왕생에 드는 시기라지.

기독교의 부활절도 춘분 즈음.

들에서 보냈다.

희안하지, 봄 들 말이다.

봄은 바람이 많다.

그런데 그 바람의 시간이, 들에 있으면 아침 열 시다.

들에 있는 사람이라야 안다.

바람 한 점 없다가도 일기 시작하면 정말 열 시.

자연이 하는 일이다!

이웃의 포도밭에서 비가림시설 비닐과 차광막 치는 일을 도왔다.

누가 잠깐 가위만 집어주어도 수월한 들일이다

(물꼬의 나날 또한 또 얼마나 그러하던가).

물꼬는 올해 농사도 그리 이웃에 손 보태며 해나가려 한다.

그렇게 자두를 먹고 복숭아잼을 만들고 포도즙과 사과즙을 먹고

김치도 그리 담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는 소사아저씨가

아이들이 도는 소도 둘레 농사용 부직포를 깔아 풀을 잡았다.

무서운 기세로 오를 풀들 속에서 거기 동그랗게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모종판에 옥수수와 호박씨도 놓았다.


이른 아침엔 목이 빠졌다.

달골에 지하수를 팠던 이가 다녀가기로 했다.

비가 많으면 물이 탁할 때가 잦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 동네 상수도를 고치러 가서

점심께나 이 마을에 올라올 수 있겠단다.

“그땐 일하고 있는데...”

내일 아침으로 밀린다.

어째 한 번에 넘어가는 법이 없는 올 봄 일들이다.

저녁답엔 지난 번 달골 마당을 지나간 산판 건으로 뒷정리를 위해 의논하는 자리가 있었다.

달골 콩밭으로 물이 넘친다.

원래도 물이 많이 나는 곳이었는데,

굴삭기 오르내리고 나무 실은 트럭 오가며 경사지 밭 한가운데로 아주 길이 만들어져

물이 더 콸콸댔다.

지금 그네의 호두나무 밭에 굴삭기가 들어가 있으니

그 밭 작업이 끝나면 들어오겠다 한다.

기다려보기로.


읽던 책에 밑줄을 긋다 잠시 멈춘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야 그럴 수 없지만

지금 관심 있는, 지금 처지와 생각이 반영된 흔적이다.

어느 때고 유효한 것도 있고, 전 생을 관통하는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밑줄은 또 하나의 기록이 된다.

아이가 어느 날 어미의 책장에서 빼어든 책을 읽다가

어머니가 젊었을 때 어떤 생각들을 하셨구나 헤아려본 것도

바로 그 책에 그어진 밑줄 덕이었다 했다.

내 생각이 더 오래 머무는 거기, 밑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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