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8.물날. 흐림

조회 수 674 추천 수 0 2015.05.07 02:32:07



못 위의 잠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숩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하나, 그 위의 잠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나희덕/창작과비평사, 1994)



또 한 어르신을 보냈다...


이른 아침 달골에 세운 장승 발치에 개울에서 돌덩이를 두엇 가져다놓고

아침 수행.

아이를 태워 김치국밥을 멕여 보냈다.

아이와 함께하는 그런 시간은 음식에 얽힌 지난 시간들과도 한 몸이다.

겨울 새벽이면 할머니는 긴 밤을 자다 자다 일어나

아침을 불러오기 위해 부엌으로 나가 김치국밥을 끓이셨다.

따로 국물을 만들어두지 않아도 그냥 굵은 멸치를 넣고 바로 끓인 국밥.

외할머니를 생각했고, 아이랑 당신 삶을 나누었다.

그렇게 대를 이어가는 이야기들...


바깥수업이 있는 날.

영남대로엔 한 쪽은 은행나무가, 한 편은 벚나무가 채우고 있었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눈부시겠구나.

부고.


이 밤, 오산, 서현샘네 빈소.

아버님 쓰러지셨단 소식에 뵈러 가야지 하는데 말리던 그니였다.

‘그래도 그대 얼굴이라도, 문 앞에라도 다녀와야지.

이럴 때 얼굴 보는 거다.

아픈 분 뵈지 못해도 그런 기운을 보태 나아지는 것.

병원을 알려다고.’

문자 오가던 오전이었는데,

오후, 세상 버리셨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가시고서야 당신 앞에 왔네.

그리 고운 딸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절했다, 그리고 훨훨 편히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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