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13.달날. 비

조회 수 684 추천 수 0 2015.05.12 01:31:43


‘...87세의 일기로 죽었다네요. 최소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건 보기 좋았어요.’

귄터그라스의 사망 소식을 자폐 친구가 보내왔다.

잊힌 진보성을 일깨워주는 제자이고 동료이고(물꼬의 품앗이샘, 그리고 논두렁) 벗이다.


이웃마을 대식샘 건너왔고, 멀리 부산에서 친구 분도 같이 걸음 했다.

아침부터 커피를 볶았네.

낮은 하늘이라 볶고 갈고, 그리고 내리니 그 향 더 오래 번진다.

정말 비는 내려버렸네... 에궁.

가마솥방 부엌 쪽 벽면 페인트를 칠하기로 받아두었던 날이다.

지난겨울 뒤집어진 흙집 지붕을 올리며 박은 못 부분의 방수를 봄으로 미뤘고,

달골 계단 참의 누수 역시 이번에 잡아보자 했고,

(이게 원래 공사를 했던 부분이기도 하건만,

그렇게 베란다를 다 뜯고 타일을 깔고 세 곳을 다 했던 일이건만,

달골 뒤란 공사와 함께 눈만 가리고 문제는 다시 드러난),

된장집 바깥벽면 페인트도 칠하자 했고,

그렇게 새벽부터 해도 하루에 못 다 할 일들인데,

날을 받은 의욕은 그러했더랬는데...

헌데, 비 온다더니, 그리 내려버렸다.


달골 올라가 다섯 주의 블루베리부터 심었네; 햇발동 앞.

블루베리 농사를 몇 해 짓고 있는 대식샘, 댁네 밭에서 건너온 것.

“비닐봉지 있나? 검은 거. 햇볕이 안 들어가는.”

심고 그 위에 비닐 깔고, 다시 흙을 덮는단다.

거기 필요한 게 맞춤하게 있으면 기분 좋은.

두리번거리는데 보일러실에서 비료포대 보였던 것.

“더 있어?”

있다마다. 쌓였다. 아이들이 눈썰매 탈 때 쓰는 것들이니.

구덩이를 파고 뒤란 무너진 흙더미에서 마사를 퍼다 넣은 뒤

비료포대를 깔았다.

그리고 다시 흙을 옮겨다 그 위로 뿌려준.


가마솥방의 부엌살림을 밀어내고, 벽면을 긁고, 페인트를 칠하고.

아, 처음 이 일은 몇 통의 하얀색 페인트를 창고에서 보면서 그걸 쓰자고 말이 나왔던 일.

근데, 개봉하니 친환경 페인트라 그랬는지 몇 해만에 다 상해버린 것.

부랴부랴 추풍령 대식샘 댁까지 달려가 쓰고 남아있던 페인트를 실어왔네.

일이 되려니 또 그리 된.


저녁, 사람들이 떠나고 얼룩이 심한 아랫부분에 덧칠을 한다.

그리고 떡본 김에 제사라

냉장고 위 모터며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닦고,

가스렌지 위 환풍기도 박박 문지른다.

바깥수돗가에도 붓을 씻으러 갔다가

여직 김칫독에서 나온 비닐이 담겨진 걸 그제야 보네.

아차차, 2월 빈들모임을 마치고 부랴부랴 산마을을 나가서는...

그러고 시간 한참 흐를 동안 여길 들여다 볼 일이 없었고나.

어느새 밤 10시가 훌쩍이었더라.

이제 그만.


그나저나 지자체의 움직임을 요청한 일이 있었는데,

보름이 넘도록 소식 더디다.

목이 길어졌을세.

이번 주엔 다음 걸음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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