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14.불날. 비

조회 수 817 추천 수 0 2015.05.12 01:35:19


이른 아침 비가 많다.

낙화유수일세.

벌써 봄 가는가.

꽃이 지는 4월은 확실히 잔인하다, 그렇다.

낙화유수(落花流水), 남인수가 불렀던(1942) 노래이기도.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젊은 꿈을 엮은 맹서야

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한많은 인생살이 꿈 같이 갔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낙화유수, 가는 봄의 경치.

살림이나 세력이 약해져 아주 보잘것없이 됨을 비유하기도 하는.

고전무에서 두 팔을 좌우로 한 번씩 뿌리는 춤사위도 낙화유수라 한다.

사전에는 이런 말도 있더라.

‘떨어지는 꽃에 정(情)이 있으면 물에도 또한 정이 있어 떨어지는 꽃은 물이 흐르는 대로 흐르기를 바라고 유수는 떨어지는 꽃을 띄워 흐르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남녀가 서로 그리워함을 이르는 말.’

그리운 모든 이름이 이 봄 낙화유수이노니.


이른 아침 눈을 뜬다.

서둘러 해건지기를 하고 가마솥방으로 들어간다.

어제 부엌 한 벽을 칠하느라 벌여놓은 어수선한 살림들.

마르니 벽이 얼룩덜룩.

하기야 초벌칠이었으니.


자, 다시 시작해볼까.

우선 정리가 가능한 것들부터 좀 치우기.

점심을 챙겨먹으니 그제야 붓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마을 한 형님의 문자다; 상자 형님네.

‘수업 안가는 날이지? 파김치 담으라고.’

여러 형님들도 댁에 건너오셔서 곡차 한 잔.

비오는 산마을이니 그렇게 농기구를 잠시 놓은.

다듬어 온 파로 김치도 담고.


늦은 오후에야 붓질.

그런데 모든 벽을 다 칠하기엔 남은 양이 어림없다.

그러면 얼룩이 심한 쪽만.

그런데, 칠하다 보니 오른 쪽 저 위에 못이 보이는데,

고개 돌려 학교 이념이 걸린 위에 걸치듯 둔 액자를 연신 본다.

흐흐흐흐, 거의 맞춤하겠는 걸.

그러니까, 금룡샘이 선물한 아마다블람(히말라야에서, 그러니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라고들 하는)을 게다 걸어두면 딱 되겠는.

아, 글쎄, 정말 꼭 그 자리더라니까.

“(못을) 언제 박았어요?”

소사아저씨도 놀래서, 거기 액자 걸려고 그 사이 박아놓은 못인 줄.


아마다블람 사진 아래엔 핸디코트를 바르고 조개를 붙였다.

그 조개로 말할 것 같으면 이생진 선생님과 동행했던 우이도 여행에서

류옥하다 선수가 서너 시간이나 팠던 조개로

삶으면 껍질이 다 하얘버린다고 목포에서 다섯 시간을 내리 달려와

야삼경 형광등 아래서 날로 까서 씻어 말려서는 색을 유지시킨 것.

오래 정수기 위에서 바다를 대신해주고 있었더랬네.

드디어 그들도 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삑삑삑삑삑, 요란한 가스유출경보기!

아차차차차차, 아주 늦은 저녁밥상을 차리며 가스 불을 막 껐는데,

밥이 뜸뜰 동안 오래돼 녹슨, 그게 30년이 다 돼가는 물건, 철제 선반에

마침 창고에 있던 라카들을 들고 와 뿌렸는데,

환기를 위해 창문 다 열어두었으나 비 내리니 라카 통의 가스들이 미처 빠져나가지를 못해

불기운에 그리 울어댔던 것이라.

“폭발 직전이었나 봐!”

고마워라, 하늘.


시계는 밤 열한 시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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