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그때 나는 여기 있었고, 지금 다시 여기에 있다.

작년 3월 참석했던 파리의 한 국제회의 일정이 올해는 4월로 늦춰졌다.

그래도 아침저녁 아직 꽤 쌀쌀한.

마로니에 꽃 한창인 파리.


파리 개선문 언저리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파리에 다 있다, 빅토르 위고를 생각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랬다더만,

만약 당신에게 젊었을 때 파리에서 살게 될 행운이 주어진다면

그 이후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당신의 남은 일생동안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과 함께 머물 것이다, 하고.

그런가?


보헤미안의 도시 파리.

고독을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번잡한 카페를 원하고

마음껏 되는대로 살고픈 욕구와 한편 진지함에 대한 욕구를 더불어 가진,

이 모순된 욕망을 충족시켜줄 도시는 파리와 샌프란시스코뿐이라지.

프루스트와 보들레르와 빅토르 위고, 뒤마의 나라 프랑스.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가장 훌륭한 문학가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영어’로 번역하기가 아주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루스트가 오히려 그들의 자랑거리인 나라.

버스를 타고 가며 옆자리 할머니로부터 네팔 지진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서 구호단이 갔다는 소식도.

자주 하는 생각이다만, 파리 사람들의 현실참여적 발언은 늘 인상적이다.

프랑스는 그런 나라다.


저녁마다 도시를 걸었다.

<빛과 꿈의 도시 파리기행>(기무라 쇼우사브로/예담, 2001)을 펼치기도 했다.

굳이 시간 내서 읽어라, 권하기까지 할 만은 못해도,

파리를 안내하는 책이 넘쳐나지만,

때로 오래된 책이 그리는 파리가 지금의 정보를 전하기에는 분명 밀릴 수밖에 없겠지만,

왠지 더 파리의 현재(여전한?)처럼 읽히고는 하더라.

기행문학에서 지금도 신간처럼 브루스 채트윈 책이 읽히는 까닭도 그런 하나이기도 하겠는.

르누아르 작품이나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같은 19세기 그림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우산의 이유도 기무라씨 책이 언급해주었네, 늘 궁금하더니.

우산 혁명이라 부르더만.

졸참나무나 서양 물푸레나무, 자단 등으로 만든 몸체에 길이가 120cm에 달하고

살은 고래수염(19세기 초엔 강철로)에 살 모아주는 윗부분은 동이었던 무게 1.5~2kg의 우산이,

1846년 프랑스 리옹에 사는 피에르 뒤상이 강철재 우산살을 속이 빈 튜브 형태로 만들더니,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더욱 가벼워져 300~500g에, 50프랑이던 가격도 7~8프랑.

하여 사람들은 우산을 가지고 다니기를 좋아했고 비가 내리면 행복해 했다는.

그림에서 우산을 쓰던 이들이 그랬던 듯싶었던 표정이었지.


p. 71

파리는 고독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같은 고독이라도 성공한 시대와 성공하지 못한 시대는 그 모습이 다르다. 예를 들면 드가의 <압생트>(1876년)를 보면 19세기 후반의 활력 넘치는 성공한 시대의 고독, 즉 혼자 이겨낼 수 있는 자신과 기력이 넘치는 고독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파리의 고독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혼자서는 견뎌낼 수 없는, 그래서 함께 모여 즐기지 않으면 안되는 성공하지 못한 시대의 고독이었다.

p.87

산책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이 사는 곳을 여행하는 것 걸으며 주변의 건물이나 공원을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100p를 넘기며 크루아상을 얽힌 얘기도 읽었네; 초승달을 말하는, 그러니까 ‘초승달 빵’.

초승달은 이슬람교 나라의 상징,

크루아상의 첫 글자 C를 대문자로 쓰면 ‘이슬람교 구가’라는 의미.

1683년 빈은 58일 동안 이슬람교도 군사들에게 포위된 일이 있었다. 대 재상 카라 무스타파가 지휘하는 오스만 투르크 보병군 30만이 터키 행진곡을 연주하면서 10만의 빈 시민을 포위했다. 빈 시민은 공포에 떨어야 했으며 수천 명의 시민이 굶어죽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고양이, 당나귀는 물론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잡아먹었다. 빈 함락이 기정 사실화 되자 시내에 있는 모든 빵집에서는 터키군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밀가루를 몽땅 털어 빵을 만들었다. 바로 이 빵이 지금도 ‘키프텔’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는 ‘초승달 빵’. 그런데 함락 막바지에 다다른 9월 12일 독일과 폴란드 연합군은 빈을 구해준다. 터키군에게서 해방된 시민들은 이번에는 반대로 승리를 축하하며 이 ‘초승달 빵’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고.

시대는 바뀌어 1770년 5월 16일,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텔레비전아의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는 14세의 나이로 베르사유로 출가한다. 그리고 바로 그날, 황태자 루이(당시 16세)와의 성대한 결혼식이 거행된다. 그때 파리의 빵집에서는 황태자비를 환영한다는 의미로 초승달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키프텔’에서 ‘크루아상’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면 크루아상은 환영한다는 의미와 꽤 인연이 깊은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파리의 호텔에서는 따뜻하고 향이 좋으며 부드러운 14세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생각나게 하는 크루아상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그린 부분도 머무는 발길 같았다.

대성당의 입구는 좁다. 모든 성당이 그렇다. 세속에서 분리된 성스러운 세계로 들어서는 입구.

입구가 좁아 내부는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다른 가치와 다른 감각이 지배하는 세계.

산사로 가는 길을 생각했다,

일주문을 지나 한참 걸어 극락문에 이르고 다시 해탈문으로 지나는, 불국토에 이르는 길 같은.

눈을 대신해 귀와 코와 피부감각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정감의 세계는 확대되고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색다른 상념에 빠진다는.

거기서 위를 향해 사진을 찍으면 건물은 더 고고하게 보이고

그만큼 하나님은 더 형형한 모습으로 우리 위에 있다는.

하나님의 영원한 집, 성당과,

지상에서 해탈에 이르는 부처의 집, 사찰...


공식일정을 끝낸 뒤엔 하루를 불로뉴 숲에서 보냈다.

강을 건너는 배를 거쳐야만 하는 찻집에서

어린 아이들을 거느린 한 가족을 만나 걷고 노닥거리기도 한.

더하여 멀리서 몇 벗을 그리며 쓰는 엽서가 기쁨이었네,

가까이 좋은 벗들을 얻어 이러저러 덕이 컸는 걸

고맙다는 인사조차 인색하였더니 먼 곳에서야 비로소 한 줄 전한.


그리고... 일에 대해선... 국제회의란 게... 일천한 개인으로 묘사할 길 없어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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