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선배 하나가 <수전 손택의 말>의 한 구절을 보내왔다.
내 작은 자살...
산마을로 돌아오는 밤,
비바람으로 길엔 나뭇잎을 매단 가지들이 널려있었다.
바람과 나무가 씨름 좀 했는 갑다.
태풍 지난다했지.
하루하루가 어느 때보다 쉽지 않다 싶은 봄날이다.
아침 9시 대기상태로 있던 군청 미팅이 오후로 시간이 잡혔더랬다.
오전에는 학교 일을 좀 챙기겠구나,
교무실에 들어 컴퓨터부터 켰는데,
이런! 물꼬 누리집이 안 된다; 계정만료안내.
이러도록 그간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니.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내가 잘 모르는 분야, 가슴부터 덜컹한다.
찬찬히 따져보자.
관리자가 밖에 있으니, 그가 자주 쓰는 메일이 아니고 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부랴부랴 이곳저곳 연락들이 오가고...
그러고 보니 오전이 훌러덩 날아가 버렸다.
이른 아침 6시가 되기 전 시작한 하루인데도.
그래도 해결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우냐.
버린 반나절이 숱한 온 하루에 견준다면 무에 긴 시간이랴.
군에서 문해교육 과정을 개설했고 첫 강의가 있었다.
강사가 아니라 수강생으로 간.
“교장샘이 우리 좀 가르쳐 도!”
마을 할머니 몇의 오랜 바람이었다.
그런데 시작하면 또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반복,
그러다 농번기 오고, 그러다 해가 바뀌고,
그렇게 여러 해 갔다.
할머니들 더 나이 들기 전 해야지 하던 일이었다.
문해 바닥에서는 무슨 이야기들이 되고 있는가, 살피고 도움이 되는 시간이길.
전화위복 뭐 이런 시간이기도 하겠다.
달골 기숙사 건으로 이번 봄학기 내부수업을 하지 않겠다 해놓으니
뜻밖의 일들이 또 걸음을 재게 하는.
아, 기숙사 공사 도움 요청 건은 군청의 한 부서에 떨어졌고, 오후에 협의가 있었다.
어디로든 가지, 그 말도 요새 입에 달린 말이 되었다.
오랜만에 찰흙을 만졌다.
얼마 전 찻주전자용 화로 하나 만들었고, 또 하나를 만드는 중.
구입했으면 하고 알아보니 몇 십만 원이 예사였던 물건.
그만하기야 하겠냐만 내 손으로 만들고 말지.
이왕 구워 달라 가마에 부탁할 일이니
이번 참에 큰 퇴수기 하나도 마련해야겠다. 만들겠다는 말.
마을로 들어오기 전 면소재지의 이웃에 들렀다.
두루두루 또 나눠준다.
아주, 아주 아주 가끔 손을 좀 보탠 일이 있는데,
가는 것보다 오는 게 늘 많다.
곶감이며 감식초이며 바구니며 사과며 또 한 보퉁이 실어왔다.
그의 도움도 물꼬에 큰 부분이나 그로부터 배우는 가방이 더 크다.
스승은 늘 그렇게 우리 곁에 있노니.
아, 오늘도 하루가 길었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