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좋다.

그러나 비 없어 가물어 바람의 싱싱함이 낡아 찢어진 천 같다.

풀들은 볕에 기가 죽어 무참하고.

그 놀라운 기세들이 말이다.


그래도 사람의 일은 사람의 일이라.

마을 들은 부산했다.

온 마을 사람이 다 쏟아져 나와 있는 듯했다.

소사아저씨도 살구나무 둘레며 빨래방 둘레며 잡초들을 뽑았다.

그리고 감자밭 열무밭 상추밭 시금치밭, 밭이라지만 사실 두둑 두어 줄씩, 풀 맸다.

바람이 제법 센 오전이었다.


관내 한 중학교의 컨설팅장학에 동행했다.

장학 의뢰 항목에 자유학기제 운영이 들어가 있었던 것.

주관 장학사님이 불러 함께 자리했다.

그런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거라 예상했던, 작년까지만 해도 그리 보였다, 자유학기제는

제도 안에서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었다.

아, 그건 그것대로 그 안에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돌아가겠구나.

지자체와 연결된 진로체험센터가 하나씩 만들어지는 일도

제도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는 게 좋겠다.

그걸 물꼬가 하면 어떻겠냐 교육장님이 말씀 넣어 오신 일 있었으나

우리가 그리 일을 하나 더 만들 일은 아니겠고,

군과 연결하여 읍내 안에서 해결하는 게 낫겠다 했다.

다만 물꼬가 지원할 일이 있는 부분이 생긴다면 달려가겠노라 했다.

“여기까지 모였는데 옥계폭포 한 번 올라갔다 옵시다.”

장학사님들과 걸으며 물꼬 사는 이야기들을 했다.

잘하자고 한 일이 꼭 결과도 그리 이어지는 건 아니지.

단장을 한 폭포는 아래 소가 고여 물이 검었다.

흐르지 못한 것들은 그리 썩기 쉬울 지니.

가물어 더욱 걱정이다.


군청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한 과가 물꼬 관련 보조사업을 검토에 검토 중이라 하고,

군의회 부의장님이 감사 시 책임을 지겠다 나서셨다.

“법적인 문제가 걸리니...”

사유재산으로 돼 있으니 그럴 밖에.

그걸 어떻게 해결할지 길을 찾아보겠다 했다.

5월 중순, 얼마큼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할까.

흐르더라도 일이 되면야...


박민규의 소설 하나 쥐고 쉬는 밤; <지구영웅 전설>(문학동네, 2003)

야유 혹은 풍자이지. 이 세계가 굴러가는 방식에 대한.

어떤 세계관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잠식하고 있는지 보라는.

가령 이런 대목. 대략.


- 썩은 사과 한 개가 사과상자 전체를 썩게 만든다. ‘정의’를 지키는 일은 그 상자 속의 사과 하나하나를 모두 지키는 것과 다름없는 일.

- 그런데 썩는 것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닌데

- 아마도 그건 자연이나 환경에 관한 얘기였겠지. 내 말은 우리의 손익과 본분에 관한 것. 두고두고 사과를 하나씩 꺼내먹어야 하니까. 만약 상당수가 썩어버린다면, 우리 대신 누가 먹나? 벌레. 그러니까 우리가 먹을 걸 빼앗기게 되는 것. 사과야 어떻게 된다 쳐도, 그걸 빼앗긴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 그래서 지구 위에 어떤 나라가 생긴다면, 일단은 그 나라를 정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그러지 못하면 썩어버리거나 나쁜 무리들의 먹이가 될 게 뻔하니까. 빨갱이 같은. 그래서 그 모든 나라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 그건 우리의 사과를 상자에 담는 일이고, 그 사과를 썩지 않게 보관하는 일. 이 지구를 위해서도. 이를 테면 석유. 그 외의 모든 자원들도. 만약 소련이 어떤 나라를 차지해버린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 나라 자원은 모두 나쁜 일을 하는 데 쓰여 고갈. ‘정의’를 위해 쓰여야 할 자원이 나쁜 일을 하는데 쓰인다는 건 보통 아까운 게 아니지. 또 그건 이 지구의 환경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기도.

- 아아, ‘정의’를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군.

- 그래서 힘이 필요한 것. 힘은 곧 ‘정의’ 같은 것. 소련의 가장 나쁜 점은 더럽고 추잡한 빨갱이들의 사상, 그건 두 번째에 불과.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건 나와 맞먹는 힘을 가지려 드는 것. 그건 정말 위험한 일.

- 서로 의논을 해보는 건 어떤가요?

- 절대 안 돼. 그건 타협의 문제가 아니야. 왜? 내가 가진 힘은 이 지구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것. 나 외의 존재가 그런 힘을 가져선 안돼. 나라면 안심할 수 있지. 왜? 내가 곧 이 세계의 ‘정의’니. 정의를 실현하는 건 결국 지구 전체를 주요 지역으로 만드는 것. 즉, 썩는 사과가 하나도 없는 거대한 사과상자를 가지는 것.

- 만약 그래도 썩는 사과가 생기면?

- 싸워 무찔러야지.


‘서로 의논해 보는 건 어떠’냔 말이다.

그런데 그걸 힘 있는 이들이 원치 않지.

왜?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지니까.

그렇게 우리 삶이 그들 이익에 휘둘리지.

그래서 ‘의논’을, 그러니까 연대를 막는 거야, 그 힘들이.

그래도 우리는 쓰러지지 않지.

왜?

연대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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