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16.흙날. 맑음

조회 수 705 추천 수 0 2015.07.03 00:27:56

사회구조를 문제 삼으며 교육 불가능성을 탐색하기보다,

현재의 교육환경에서 교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두기’

어디에선가 그런 문장을 읽었더랬다.


학교에서는 오이고추 토마토 가지들의 모종을 심고

모종을 내는 비닐하우스의 옥수수 호박들 물을 주고

그리고 밭을 맸다 하고,


서울에서는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후, 2004)을 들고 ‘섬모임’이 있었다.

늦게 합류한 복현샘만 빼고 모두가 점심을 같이 먹고 다중지성의 정원에 먼저 앉았네;

김아리 윤희중 신금룡 장지용 공연규 박진희 옥영경 그리고 지복현


<타인의 고통>

타인의 고통을 염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고통을 알기는 하는 걸까?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잔혹함의 이미지를

심지어 실시간으로 우리는 속속들이 본다.

하지만 이것이 곧

“타인들의 괴로움을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이 현저히 더 커졌다는 말은 아니다.

이 이미지 과잉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리고,

“이렇듯 타인의 고통이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가 된다면,

사람들은 타인이 겪었던 것 같은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고 손택은 말한다.

이미지를 통해서 본 ‘재현된’ 현실은 ‘실제’ 현실의 참담함과 광대한 거리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손택은 말한다.

이 세계를 거짓된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라,

제 아무리 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제스처가 엿보일지라도

세계를 재현하는 이미지의 방식 자체를 문제 삼아 보잔다.

(이것이 ‘투명성 Transparency’이겠다: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우리는 사면될 수 없다.

연민을 느끼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하고 우월한 환경에 안도하며,

고통의 원인에 자신은 전혀 연루되어 있지 않다는 뻔뻔한 착각을 하기 쉽다는 것.

동정과 연민을 넘어 나와 타인이 똑같은 세상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 풍요와 안락이 누군가 고통 받는 원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숙고할 것.

더하여 고통을 없애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그나저나 번역을 좀 더 편하게 할 수는 없었나...


‘타인의 고통을 담고 있는 사진이나 영상이 계속 반복되면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바라보는 고통, 그 이미지 속의 존재들에 대해 느끼는 고통에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그런 고통을 쳐다볼 수 있는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나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통해 다시 세월호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가 빠지고 무참히 아이들이 죽고 한 해,

거기에는 다른 해석들이 있었고, 말하고 듣고 나누었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선장이 잘못한 거 아닌가? 이제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국가가 그런 게 아닌데 왜 사람들은 국가에게 자꾸 그래요?”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 하는가...

유가족 및 분노하는 이들은 국가(대한민국)가 아니라 현 정권에 요구하는 거다.

정권이 국가는 아니지. 우린 때로 착각한다. 마치 정권을 쥔 이들이 국가라고.

그리고, 그만 하라니. 우리는 수십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할아버지 성묘하러 꼼짝도 하지 않는 길 위에서 열두 시간을 귀성행렬에 서 있기도 한다.

아이들이 죽었고, 왜 죽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알고 싶다는 거다. 그런데 그만 하라니!

그리고, 유가족들 어느 누구도 돈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슬쩍 돈 얘기를 흘린 사람들은 정치권이었고, 언론들은 그걸 얼른 받아 적고 퍼뜨렸다.”

생각이 달랐던 이도 이 말에서야 비로소 세월호에 대해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생각 흔들기, 섬모임이 그런 자리이겠다.


더러 떠나고 남은 이들은 이화여대로 이동하여 극장에 앉았다.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윈트 슬립>을 보기로.

6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196분 동안 고전을 읽고 있는 듯,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과 함께.

영화의 출발점이 안톤체홉의 단편들이었다더라. 그러게. 그랬구나.

파졸리니의 <메데아>와 <스타워즈>가 촬영된 곳 카파도키아의 절경도 숨을 멎게 했다.

우리 안에 숨겨둔 위선에 대한 고발?

타르코프스키, 브레송, 안토니오니, 야스지로, 베리만의 계승자라 할 만.


영화를 보고 나와 두어 곳을 옮겨가며 곡주도 기울인, 늦은 밤까지.

세월호가 거기까지 따라왔다.

‘...국가를 믿고 순응하는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참사의 목도를 예견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연민을 보여주는 선에서, 보상금 지급만으로 세월호 참사를 덮으려는 것은 손탁의 말을 빌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비극에 대해 스스로 무감해지면서

우리 모두가 느꼈던,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 일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는 것은 더 이상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돈보다는 생명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단 한 명의 국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임지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행동입니다.’(아리샘의 <타인의 고통> 제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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