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24.해날. 맑음

조회 수 685 추천 수 0 2015.07.06 10:44:39


한낮 31도.


본관의 겨울 실내화들을 세제에 담가 며칠,

오늘에야 빤다.


이른 아침 기숙사로 돌아가는 아이를 보내면서 엔진톱을 들고나갔다.

문을 닫는 날이라는데 마침 나오시다 마주치자 고쳐주셨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저씨는 철마다 생뚱맞은 인사부터로 즐거움을 주기 시작하신다. 여전히 유쾌하셨다.

“내가 (물꼬) 가야되는데, 안 가, 내가 가면 할 일이 너무 많이 보일 테니까 못 나올까 봐.”

“사모님은 공부 마치셨어요?”

늦게 대학을 다니고 계셨다.

“대학원 갔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걸 왜 해? 허영이야, 허영. 대학만 배불리고.”

오늘도 아내 흉보기를 잊지 않으신다.

“집에 있기 싫은 거야. 일하기 싫은 거지. 화요일 목요일 이틀이나 나가.”

“그래도 훌륭하셔요. 공부하는 사모님도, 보내주시는 아저씨도.”

“보내주기는! 꼬불친 게 있어. 내가 어디 주나?”

“그래도 노름판, 쇼핑 다니는 것보다 낫잖아요.”

한참을 더 툴툴대는 아저씨.

그리 기다리다보면 고장난 것들이 그리 뚝딱 고쳐져 있다.

기다리는 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아저씨의 비법이라.


돌아와 오전에는 달골 오른다.

밭 귀퉁이에 쌓여있는 나무 자르기.

학교아저씨가 그러는 동안 나는 달골 마당 풀뽑기.

“안돼요...”

엔진톱 소리가 멈췄다.

예초기는 이제 손에 익고 작동도 쉬운데 엔진톱은 어렵다신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 움직이지 않는다.

몇 차례나 고쳐와, 작업 조금하면 고장 나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장순샘이든 영욱샘이든 오면 붙잡고 단단히 물어봐야겠다.


오후에는 바깥수돗가에서 보낸다.

실내화들을 빨고 부엌에서 삶고 빨아야할 것들 챙기기.

그리고 엎어져있는 고무통 겉면에서부터 수돗가 청소.

저녁을 누가 그리 빨리 끌어당겨놓았나, 대해리에.

연락 자주 드려야지 생각만하고 연락 한번 못 드렸네요.

쌤 뵌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갑니다.

변명이지만 사학년이 되니 하루하루 정신이 없네요.’

모교에서 교생실습하는 승훈샘의 안부인사가 들어와 있다.

‘후배이자 첫 제자들이랑 국어 공부하면서 예쁜 추억 많이 만들고 있어요.

... 작년에 저희 학우들이랑 쌤 만나 뵙고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물꼬 다녀온 이야기 한보따리 풀어놓을 때마다

다들 그때처럼 두근거리고 설렌다고 합니다.

옥쌤 생각 많이 난다고들 하구요.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작년 물꼬를 방문했을 때 계절이 돌아오니

다들 그때 생각도 나고. 맘도 다시 설레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 생각 많이 납니다, 쌤님. ^^’

오겠노라는 인사로 맺은 글월이었다.

아이들과 지내며 물꼬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라 하니 무엇보다 고맙다.

꼭 물꼬에 모이지 않아도 어디고 앉은 자리가 아이들을 통해 배움이 일어나는 곳.

오시라, 내일이고 모레고 먼 후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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