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27.물날. 맑음

조회 수 680 추천 수 0 2015.07.08 10:34:38


밭이 갈라지고 있다.

기온 높고, 비는 멀다.


첫 소쩍새 소리를 들었다.

어, 처음 맞나, 무엇이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날들이 간다. 5월도 막바지.

가물다. 비 언제 왔던가.

학교 운동장 무성한 풀까지 말라가고 있다.

청청하다 못해 파란 물 속 같은 풀들이

까부룩까부룩 말라 비틀어가고 있다.

밤이면 키우는 것들, 꽃이건 곡식이건 물을 흠뻑씩 부어주고 있다.

새벽같이 나서서 들어오는 문자들을 확인조차 못할 정도로 움직이다

학교 가마솥방에 들여온 물건들 내려놓고 달골 햇발동 들어오니 자정.

문자들을 우표 붙여 보내는 메일마냥 몰아 답들.

누리집이 얼어있어서 물꼬의 날들이 없는 움직임인양 보여도

들일이며 학교일이며 바깥수업이며 다른 기관들과의 협의며

정말 눈코 뜰 새가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저녁밥을 먹는 것도 잊고 있었더라.

오늘은 달골 마당 꽃들 물을 주는 일도 넘어가야겠네.

낼은 꼭두새벽부터 이웃마을 밭에 들어야 한다.

지난겨울 손 보탠 이들 가운데 하나의 밭.

물꼬는 늘 그리 빚이 많으니.

갚는 걸 넘어 우리도 도울 손이 있으면 좋으련

겨우겨우 갚음에 허우적. 그것마저도 충분치 않은.

누구도 무엇을 해 달라 물꼬를 도와준 것 아니지만

이 시절 부지깽이도 일으켜 세워 밭에 앞세울 날들인지라.

그런 속에 우리 아이들이 물어오는 안부와 질문들,

고마우이, 그래그래, 우리 살아있노라,

그래그래, 우리 살아가노라.


천을 좀 사들였다.

그래도 틈틈이 살림을 장만하는.

이불 한 채를 만들리라 한다.

물꼬의 가장 큰 논두렁이 기락샘인데, 가족한테 희생을 요구하는 물꼬의 세월이었다.

그를 위해 처음으로 준비하는 선물인가 보다.

그것도 시작은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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