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28.나무날. 맑음

조회 수 674 추천 수 0 2015.07.08 10:35:40


날은 가물어 사막화 되어가는 몽골의 대지처럼 먼지로 뿌옇다.

이른 아침이라기에도 여름날 그리 이를 것 아닌 6시,

후다닥 오늘의 일정에 필요한 것들을 차에 쑤시고

이웃마을로 달려갔다.

거기, 이곳처럼 역시 깊숙한 산마을의 포도밭이 순을 질러 달라

팔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대식샘네 포도밭에서 주인 부부와 셋이서 일을 한다.

볕은 따갑고

좀 늦은 포도순 작업에 바빴다.

잎사귀 아래로 기어드는 벌레마냥 잠깐씩 앉았는 호두나무 그늘이 고마웠네.

농사일이란 것들이 이르게 손을 쓰면 그리 일도 아닐 것을

이래저래 한 이틀만 늦어도 배로 손이 간다.

얼마나 종종거렸을 날들이까.

영애형과 둘이 마주보고 포도나무 고랑을 나아가고,

대식형은 줄기를 집거나 앞뒤로 다른 볼일들을 보거나 우리들을 바라지 하거나.

아무리 편한 사이어도 일꾼 하나 부르면 그를 대접하는 일이 또 일일지라.

바리바리 싸온 먹을거리들이 한 살림.

그리 안 해도 된다 했지만 어디 그렇던가.

에고, 가끔 일을 도우러 나서면 그래서 도시락도 싸서 가건만

그것도 나이 들고 나 바쁘니 맘처럼이지가 않았네.

앉아 받는 밥상이 거했노니.

농사일이 올해 처음인 영애형은 아무래도 손이 더뎠다.

같이 가다 끝에 이르러 다시 맞은편을 향해 가서 만나면

그제야 한숨 쉬고 다음 고랑으로 넘어갔다.

밭일을 처음 갔을 때 어르신들이 늦은 내 손의 속도를 맞춰주느라

이쪽저쪽을 그리 오가며 일을 해주셨더니

이제 나도 익은 손이 되었네.

나를 그리 키워준 안내자들이 있었노니

유기농장 광평의 조정환샘과 정현옥샘이 첫째라.

해마다 배추도 키워주고, 때때마다 먹을거리를 나눠주고,

학교를 가지 않은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몇 학기를

주마다 한 차례 데리고 그리 농사선생도 되어주셨던 당신들인데

이 봄은 당신들 밭에 신발짝도 들여놓지 못하네.

죄송하고 고마운 맘 남의 밭에서 또 들었더라.

6시 일을 잡고 씻은 뒤 부랴부랴 읍내 와인공부모임에 좇아갔다가

돌아오며 광평농장 들러 고단했을 몸 안마나 겨우 해드렸다.


가물다 가물다 해도, 그래도 사람 입에 들 것들이 또 그리 자라고 있더만.

고마운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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