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기온은 30도가 넘었다, 답사 첫날.

밭에선 흙먼지 풀풀,

연일 물을 대는 논과 밭을 뒤로 하고 산마을을 나서다.


서산 삼존마애불 앞.

국사 교과서에 한 페이지를 전체로 채웠던 백제의 미소.

저 아래 까마득한 계곡에서 절벽으로 올려다보았을 마애불은,

누군가가 그리 그렸을 그 마애불을

우리는 발치에까지 올려쌓은 돌 기단들 위에서, 바로 눈앞에서

긴 세월 깎였을 희미한 윤곽을 자세한 윤곽으로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가운데 석가여래 광배의 왼쪽, 오른 쪽으로 세 번째가 화살표처럼 가리키는

선 너머의 좌불이 보이기까지 하는,

물론 해설사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마애불 세 존자의 광채로 절대로 그런 게 있을 리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작은 불상조각까지 다, 다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 드러내고 가까워지자 옛적 있었을 경외감은 사라지고,

세월에 바랜 짠함이 묻어나기까지.

허망하기까지 한.

서산 삼존마애불 앞에서 몇 시간을 앉아 그 표정을 살피고 또 살폈네.

가시는 분들께도 그러기를 권하노니.


이국적인 삼화목장(지금은 한우개량사업소라던가) 600만평 초원을 지나 개심사로 발을 옮겼다.

1킬로미터는 족히 되겠는 양쪽의 소나무들 끝에

오른쪽으로 장방형 연못과 그 건너 종루와 안양루를 지나

겹벚꽃나무 모란마냥 핀 그늘 앞 해탈문으로 접어들다.

해탈문 범종와 무량수각과 심건당들의 기둥과 창방과 문지방은

여전히 나무의 자연스런 평태대로 쓴 나무기둥들이 변함없이 그리 있더라.

심건당 마루에 걸터앉아 저녁이 내리는 마당을 내려다 보며 마음을 부렸네.

그런데 심건당 앞 목련은 없어지기 여러 해라네.

(지붕이 맞배인데 공포가 다포식인) 대웅보전 기단에 서서 구름처럼 보였을 목련...

목을 축일 감로수는 지하수 펌프 장치로 올려야 해서 좀 뜨악하기도.

나올 때는 연못 외나무다리를 건너 나왔다.


이튿날은 비가 내렸다.

책을 읽으며 어둔 오전을 뒹굴고, 느지막히 신두리해수욕장을 향했다.

맑은 하늘, 고맙게도.

그런데, 아직 흐린 끝이 남았던가 보다.

갑자기 안개 몰려오고 몰아친 바람, 사진을 찍으러 왔던 젊은이들이 탄성이 이어졌다,

반가움인지, 바다가 부린 변덕이 연출한 장관에 대한 경이인지.

바다 안개에 묻혀 모래 위를 걸었고,

백리포와 천리포와 만리포도 이어 걸었다.

어느새 안개와 바람을 밀어낸 바다가 조개껍질과 고동을 주었다.

백리포에선 무슨 굴삭기처럼 온 모래밭을 파서 조개를 캤고,

저녁에 삶아 밥상에 올렸네.


사흘째는 만리포 태안예술제를 기웃거렸고,

행사장에서 준비한 요트체험에도 참여했다.

함께 탔던, 천안에서 그거 타러 거까지 온,

절대 일어서지 않겠다던 여섯 살 아이를 북돋워 서게 하여 같이 재미를 더하기도.

“집에 돌아가서 후회할까봐...”

달리는 모터보트로 옮겨서는 놀이기구에서마냥 신나서 소리까지 지르던 아이.

드디어 수목원에 들었다.

이곳에 이르자고 왔던 걸음이었더랬다.

벗이 내준 별장에서 이틀을 묵고, 마지막 밤은 수목원에서 묵었다.

숙박인들을 위한 반짝모임 해설이 있었고,

그 숲길의 그루터기에서

다른 이들에게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들려줄 기회를 얻었네.

사랑하는 소년에게 사과를 주며 행복했고,

집이 필요한 청년이 된 소년에게 가지를 주어 행복했던,

여행을 떠나는 중년이 된 소년에게 배로 쓰이며 행복했으며,

이제 돌아와 쉴 자리가 필요한, 노인이 된 소년에게 쉴 밑둥을 주었던 나무.

‘그리하여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수목원에서 낭새섬을 바라보며 떨어지는 해와 함께 빛나는 5월을 보내주었다.

그리하여 행복했다. 곁에 사랑하는 벗이 함께 앉았더랬으니.


나흗날인 6월 첫날은

천리포수목원 미개방지구의 새벽길을 걷는 호사도 누렸다.

그 길에서 네잎 토끼풀도 건졌네.

사랑하는 벗과 둘이 시작한 여정이 셋이었다가 다섯이었다가 일곱이었다가 여덟이었다가

돌아오는 길 다시 둘이 되었다.

연일 장에 가서 가리비며 패류들을 가져와 삶았고,

마침내 시인 이생진 선생님께서 권해주셨던 게국지도 먹어보았던.

맨발의 시간이었다. 어디고 맨발로 다녔다.

맨가슴으로 만난 천리포수목원과 그 언저리였다.


그리고,

돌아와 부랴부랴 학교 뒤를 돌아가는 마을 뒤란길 확장문제로 교육청과 또 협의가 있었다.

면에서 떨어진 사업인데 땅 소유자인 교육청의 토지사용승낙서가 필요한.

이장님이며 마을에서는 교장샘이 어찌 해보라 등을 미는.

어렵겠다는 걸 이러저러 사정을 해본다.


학교에서는 호박도 심고 갖가지 채소들에 거름 주고 물주었단다.

“비가 와요”

학교아저씨는 비가 어찌나 반갑던지 문자를 다 보내주었더랬다.

기락샘의 벗이 보내온 꿀 두 통이 가마솥방에서 맞아주더라.

올해는 계자에서 꿀을 사지 않아도 되겠다.

전주에서 벗의 누이가 보내준 때죽나무 꿀과 옻 꿀도 있으니.

늘 곳곳에서 물꼬를 멕여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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