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흙날 맑음

조회 수 1461 추천 수 0 2005.03.03 20:44:00

2월 26일 흙날 맑음

류옥하다 외할머니가 다녀가셨습니다,
바리바리 물건들이 실린 트럭으로 오셨지요.
그 큰 영업용 냉장고 두 대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다 실으셨어요?"
포크레인으로 올리셨답니다.
우리 아이들 공부하는 상이 늘 삐걱거려
얼마 전 밥알식구들한테 나무로 짜면 어떻겠냐 했던
바로 그 상들도 열 넷이 왔습니다.
지난번에 온 관리기에 미처 따라오지 못한 부품도 왔지요.
"이건 뭐예요?"
압력밥솥 작은 놈이 있었음 좋겠단 얘기도 마음에 담아가셨던 모양입니다.
보름이라고 공동체식구들 오곡밥이나 챙겼으려나 하고
부러 오곡찰밥 하셔서 게다 옮겨오셨네요.
"열두 가지를 하는데 올 해는 하나가 빠졌네..."
탕수국까지 끓여 실어오신 곁에
왼갖가지 나물들이 그득합니다.
몇 가지 밑반찬과 젓갈들도 꺼내시더이다.
아, 하우스에 남아있던 배추도 실려 왔네요.
몇 해 키우셨다는 대추나무 네 그루도 내렸습니다.
집에야 포크레인으로 푹 뜨면 되지만
예는 아직 땅이 꽁꽁 얼어있으니
임시로 텃밭 한가운데다 묻어둔다고
형길샘 상범샘이 죽으라 팠지요.
"하이고 주고 욕먹겠네, 우리는 벌써 시장에 묘목들을 팔길래..."
그리고는 혹여 노인네들이 괜히 신경쓰이게라도 할까
후다닥 가부리셨답니다.
댁에서 보내온 된장 다 떨어졌다고
내려가면 당장 택배로 보내주신다는 말씀과
올 해는 가마솥 예다 갖다놓고
된장 고추장도 같이 담아내자는 말씀 남기시고.
나가는 어르신들 차 꽁무니에서
열심히, 열심히 살아야지 다시 다짐하였더이다.

혜린네가 이사를 들어왔습니다.
모남순님이 2005학년도 부엌을 맡고
짬짬이 농삿일을 나누기로 하였으니
서울에는 그 가족 가운데 김영규님만 남습니다.
꾸려온 짐을 부리고
김영규님은 3월 1일까지 일도 거들다 가신다지요.
바닷물 먹은 놈들을 잔뜩 싣고 와
연구년을 떠나는 샘들을 위한 곡주상도 차려내셨습니다.
그날 밤은 참으로 깊기도 하였는데,
우리는 물꼬가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 함께 감동하였더라지요.
결코 저버릴 수 없는 물꼬의 세월,
그리고 절대적인 관계의 시간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런 공동체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때보다 행복한 밤이었더이다.
어여 혜린이 아버지도 마저 내려와
농사를 같이 지을 날을 기다립니다.

길을 지나던 맥토지개발의 대표 김세명님이
젊은 할아버지의 괄세에도(약속 없이 찾아들었으니)
꾸역꾸역 가마솥방까지 들어오셔서
오곡찰밥까지 드시고 가셨습니다.
학교 이야기에 반가워하시고 당장 논두렁이 되셨는데
돌아보니 상 위에 첫 후원값까지 내놓고 가셨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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