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게도 비 내렸고, 그리고 고맙게도 비가 그쳤다.

장마 소리 들리지도 않더니 25일부터 장마란다.

저런 빗줄기를 언제 보았던가 싶게 굵은 비가 제법 내렸다.

비 근 사이 금룡샘이 주말의 시 잔치를 위해 준비해온 걸개와 거치대를

고래방에 걸고 또 설치하고,

그리고 대해 골짝 들머리와 마을 삼거리와 교문 현판 아래 현수막을 걸었다.

금룡샘은 빈 노트들을 두 상자 실어오기도.


밤, 금룡샘을 바래다주러 대덕산 아래 다녀왔는데,

억수같이 비 내렸다. 우두령 넘어오니 말짱하더라, 길이.

기표샘과 희중샘이 대구에 있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주말 빈들모임에서들 보겠고나.

물꼬를 매개로 닿은 연들이 그렇게 밖에서도 진한 우정들을 쌓아간다.


인성교육 교수요원 워크숍으로 지난 한주를 훌러덩 보냈다.

날렸다, 라고 말해야 더 옳을.

너무 어처구니없는 교육과정이어 강력하게 항의했고,

심지어 도중에 도저히 더 들을 게 없겠다 보따리 쌀 것을

그래도 마지막까지 들으면 다를 수 있을 거란 몇 어르신의 부탁으로 자리를 지켰다.

뭐 강의라는 것이 어디 늘 성에 찰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최소한 과정 안에서 즐겁기라도 했어야.

다들 축축 처지고, 행복하지 않았고, 감동이 없음은 물론이고.

인성교육을 하겠다는 기관들 또는 교수자들이 제발 돈벌이 일거리 하나로 삼지 않기를.

정녕 우리 아이들에게 보탬이 되기를.

국가가 어떤 결정을 하고 어찌 돌아가건

그것을 구현해내는 일선에서라도 정성스럽기를.


자, 이번 주는 주말의 빈들모임 준비; “詩원하게 젖다” - 이생진 시인이 있는 산골 초여름 밤 ④.

걸 것들 그리고 읽을 것들(주말에 일찍 들어와 샘들이 부랴부랴 하는 일들)을

이번에는 잊어먹게 금룡샘이 그리 맡아주었고,

물날이면 거제도에서 초설샘이, 이웃마을에서 장순샘이 건너와

본격적으로 할 것들을 챙기겠다.

“오라는 날짜와 시간에 갈게요.”

도우는 자의 자세를 그리 문자로 먼저 보여준 초설샘이었으니.

같이 밥바라지를 하기로 한 점주샘도 쇠날부터 들어와 움직이기로.


그런 와중에 잠시 책 하나 펼쳤네, 기계 가동 전 기름칠처럼;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집 딸들>.

나이 오십에는 또 다르게 읽히는.

너무도 당연하게 <토지>가 겹쳐지는.

말미께 용빈의 입을 빌리면 줄거리가 다 정리 되는.

- 아버지는 고아.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살인을 한 할아버지는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도 아무도 모르는. 아버지는 딸 다섯. 큰딸 용숙은 과부, 그리고 영아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오고, 둘째딸 저는 노처녀고, 다음 동생 용란이 발광.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으나 허용되지 못했고 처녀가 아니라는 흠 때문에 아편장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가고, 결국 아편장이 남편이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고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되고, 다음 동생 용옥이 이번에 죽은 것, 배가 침몰 되어 물에 빠져.


p.330

‘“화를 내요. 저번 때도 막 소릴 치며 내려가라고...”

용혜는 침을 삼키며 얼굴을 쳐들고 글썽거리는 눈물을 감당 못한다.’

울화가 치밀어 뒷산으로 간 김약국...


p.350

‘용옥은 용혜 얼굴 위의 책을 벗겼다. 얼굴 위에 눈물이 흥건히 괴어 있었다. 그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들춰 없고 한 손에 아버지 명주 바지저고리를 싼 보자기를,

다른 손에 알맞게 잘 익은 열무 김치단지를 들고 간 용옥이,

늙은 아비와 발광한 언니를 돌보는 어린 막내 용혜가 있는 너른 집이

얼마나 넓고 넓었을 것인가.


p.364

범하려는 시아버지를 도망쳐 배를 타고 통영에서 남편이 일하는 부산으로 간 용옥이

그 사이 통영으로 간 남편을 향해 다시 통영행 배를 기다린다.

국수 한 그릇을 사가지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먹는데 국수 그릇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돌아오는 그 배가 침몰하고, 며칠 뒤 인양된 용옥의 시체는 이상하게도 말짱하다.

다만 아이를 껴안고 있는 손이 떨어지지 않아 애먹고 겨우 떼어내니 십자가 하나가 모래 위에 떨어졌다.’

정갈하게 살다간 착하고 손끝 여물고 신실했던 그니.

개항이라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이 아니어도 한 세월을 살다가는 일의 쓸쓸함이 배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던 대목들이었네.


참, 김약국 고종 이중구 부부의 삶은 읽으며 퍽도 므흣한.

‘두 내외는 계집아이도 없이 퍽 외롭게 살고 있었지만 언제든지 다정스럽고 흡족한 노부부다. 마누라가 밥을 지으면 영감은 장작을 패고, 생선 한 마리라도 맛나게 보글보글 지져서 머리 맞대고 의좋게 먹는다.’

사는 게 무에 그리 중뿔날 게 있더냐, 그런 말 절로 나오는.

사는 거 뭐 있냐, 흔히 그리 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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