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오랜만에 여러 어른들이 같이하는 아침 수행이었다.

우리 무슨 연 깊어 어느 하루 산마을에서 이리 아침을 여는가.

그나저나 이틀 비 왔고 갠다한 오늘, 정말 그러했네, 고마운 하늘, 고마운 물꼬의 날씨.


6월 빈들모임의 앞머리는 시 잔치를 위한 행사 준비들을 같이 하는 시간.

“詩원하게 젖다 - 이생진 시인이 있는 산골 초여름 밤”,

벌써 네 해에 이르렀다.

달골과 학교로 나뉘어 청소.

정성스러웠다.

달골에서 베란다까지 꼼꼼하게 닦고 있는 점주샘의 등을 보는데,

마음을 내는 이가 주는 감동이 서렸다.

학교에서라고들 아니 그랬겠는가.


학교아저씨는 닭을 잡았다.

“뒤풀이에 닭도리탕을 내.”

장순샘이 키우던 것을 나눠준 것.

물꼬가 채식 중심 밥상이라고는 하나 굳이 고기를 못 먹을 것은 또 무언가.

그는 냉동실을 비워도 왔다.

“버섯탕도 하면 맛있어.”

능이버섯, 일 능이(버섯 가운데 첫째)라는, 얼린 것과

잡버섯 얼려놓았던 것, 아이스 홍시와 잘라 만든 곶감.

(그것을 또 점주샘은 잘 정리하여 어찌어찌 냉장고에 다 잘도 넣더라.)

가진 것을 툭툭 내놓은 이웃으로 나누는 마음을 또 배우고 배우노니.


이 기회에 낡은 축구골망을 바꾸기로.

서울서 선배가 택배로 보냈고 무사히 들어왔다.

그 편에 가객을 위한 새 마이크도 마련했다.

초설샘은 고래방에서 음향이며 조명이며 점검하고 있었네.


이생진 선생님이 승엽샘과 도착.

준비에 바쁠 것을 헤아려 점심도 밖에서 드시고 오셨다.

“아, 선생님...”

선생님께는 늘 어떤 말도 달려 나오지 않는, 그저 선생님 하고 부르는 게 모든 말이 된다.

고맙고, 감사하다. 계셔서, 여전히 시를 쓰셔서, 오셔서, 건강하셔서.

엊저녁도 달마다 마지막 주 쇠날에 인사동에서 있는 시낭송회를 늦도록 하고 오신 걸음.

아, 정말 내년에는 마지막 주를 피해 일정 잡기!

곧 읍내에서 유주를 앞세운 현우샘과

서울서 소울 소연 소민을 데리고 온 유설샘 미루샘이 들어서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메르스로 취소되지 않았느냐 묻는 분들도 계셨으나

대개 물꼬 지인들은 으레 하기로 한 일 하려니 하고들 오셨다.

소리와 춤을 나누기로 한 대구의 김정 선생님도 동행인과 입성.


찻자리도 마련되었네.

시 잔치 전 앞마당으로 연 세 가지 가운데 하나.

김천에서 차모임을 같이 하는 분들이 자리했다.

물꼬 논두렁인 상숙샘과 미희샘을 중심으로 지민샘 숙희샘 동행.

오미자차와 연잎차, 그리고 다식들이 어찌나 풍성하던지.

여기 일손과 마음을 덜어준다고 준비물을 모두 실어오셨다.

애쓰셨음을 어찌 다 헤아릴까.

그런데, 아, 글쎄 장승 깎기 시연은 어제 있어버렸네.

시연했음을 증명하는 나란히 누워있는 장승 둘과 톱밥.

소나무 가에서 광평 조정환샘의 ‘뻥이요’도 있었다.

일을 다 끝내고 기계들을 실어 오시느라 얼마나 번거로우셨을라나.

두 차례 튀긴 튀밥을 봉지 봉지 넣어 온 이들에게 안겨주시었네.


때건지기.

군의원님에서부터 마을에서 면소재지에서 읍내에서 황간에서 추풍령에서 김천에서

그리고 멀리 대구에서 거창에서 서울경기에서 진영에서 진주에서 청주에서 대전에서 걸음한

오십 여 사람이 밥을 먹었다.

함께하지 못 한다 미리 와서 얼굴 보였다 간 분들도 계셨고나.


드디어 한여름 밤의 꿈같은 시 잔치.

4년째 같은 자리에 서신 이생진 선생님, 그 사이 시간도 좀 흘렀고나 안타까움도 없잖았고,

그럼에도 여든일곱의 연세에 여전히 청년인 감동이 있었다.

그렇지만 앞서와 견준다면 소박하고 정감 넘치던 예년과 달리

참가자들의 시낭송을 끌어내지 못한 사회자 아리샘의 반성이 있었네.

(아리샘은 오늘 아침까지도 올 수 있나 없나 했던.

감기 때문에 인천 학교에서는 메르스 의심으로 조퇴를 권고 받았으나 검진 결과 괜찮다는.

그럼에도 겨우 겨우 온 그. 길도 길이었거니와 몸은 또 얼만치 무거웠을까.)

서로 인사하는 자리가 조금 길어진 것도 작은 아쉬움,

이 산골까지 걸음하게 된 그 인연들에 대해 물꼬 측에서 잘 알려드리지 못한 불찰도 컸네.

특히 김천에서 온 어르신들은 두어 해전부터 아주 큰 고목 같은 분들이신데

사람들에게 소개를 잘 하지도 못하였고나.

시강은... 글쓰기의 습관에 대한 이생진 선생님의 말씀은 훌륭한 공부였으나

한편 선생님의 시와 노래가 적어 그 무엇보다 아쉽더라.

다음엔 정말 시가 더욱 중심에 있는 시간이길.

지난 세 차례처럼 자리에 앉은 이들도 낭송을 미리 준비토록 하자 했네.

김정 선생님네의 선비춤과 민요, 그리고 뒤풀이 앞마당의 사회는 유쾌한 감초였다.

야삼경도 지나 술에 살아남은 이들만 남아 갈무리모임을 하는데,

역시 시가 더 풍성한 자리였으면 하는 바람들 있었다.


사람들이 잠자리로 가고 교무실에 들어갔다가 지용샘이 보낸 메일을 열었다.

물꼬의 품앗이이고 논두렁.

대학을 졸업하며 자기가 버는 돈의 10%는 사회에 환원한다고 마음먹은 그는

공정무역을 하는 곳과 물꼬에 후원을 하고 있다.

자폐를 지니고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그리고 최근 직장을 옮겼다.

‘새 직장에서도 살아갑니다’

메일의 제목이 그러했다.

오늘은 그대가 또 나를 살리누나.

나도 물꼬에서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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