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잠이었네.

짧으나 깊은 쉼이었네.

매미가 오늘도 더울 거라 울며 깨웠다.


초등 계자 끝에 남은 빨래들부터 하는 아침.

사람 다녀간 자리들은 아무리 떠난 이들이 정리를 하고 간다 해도 남은 이들에게 남겨진 일들이 적잖다.

사람들을 산오름에 보내고 학교에 남아 본 인영샘은 그 많은 일들을 그제야 알았다며

떠날 때 정리를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더라지.


바람에 기대며 바깥의 나무 그늘에서 ‘핵심감정’ 보기.

나를 이루고 있는 감정들에 대해 살폈다.

번번이 걸리는 일에 걸린다. 그 뿌리를 찾아가보기.

그런데, 자신의 단점은 다른 편에서 보자면 장점이고 강점이라.


점심을 먹고 고추밭으로 갔다.

작달비 내려 비닐하우스 쉼터에 모다 모여 여름 한낮을 즐겼네.

비 좀 잦아들고 그러나 먼지잼처럼 계속 내리는 속에

비옷을 입고 장화신고 너른 밭에 들어 익은 고추를 따내기 시작했다.

겸손해야 수월한 고추 따기.

어느 순간 볕이 났다.

비오거나 흐리지 않았으면 이 더위에 엄두나 냈을 일이던가.

하늘 고맙고 감사한.


돌아오며 민주지산 들머리 물한계곡에 갔다.

그찮아도 민주지산 잠시 들어가 잣나무숲이라도 걸으려 했던 일.

계곡에 들어 찰방거려보고

금룡샘은 속옷탕을 하였네, 알탕까지는 못 하고.

수영복을 챙겨 입고 왔다더니 빨간 수영복 감탄케 하고 물에 풍덩 들어갔더라.


저녁은 ‘보글보글’이었다.

예닐곱, 여덟아홉 개의 방이 열리면

아이들은 제 가고 싶은 곳에 신청하여 요리를 하는 보글보글.

여섯 일곱 밖에 되지 않으니 굳이 그리 나눌 일은 아니었고,

금룡샘을 중심으로 샘들이 김치찜을 했다.

밥 하는 사람 좀 쉬어가라는 배려이기도 했으리.

좋더라. 한 끼 쯤은 그리하니 밥바라지로서도 참 좋더라.

아, 계자 아니고는 내가 밥바라지도 하며 전체 일정을 진행한다,

어디서 선생이 아이들 밥해가며 수업하더냐, 섬김과 긍지와 자부심으로.


장순샘이 왔다.

모두 건너가 고추밭에 손을 보탠 덕에 잠시라도 어른 계자에 함께 할 수 있었네.

밥상에서 아리샘과 장순샘의 ‘떼선’이 있었다; 떼로 보는 선.

지난 언제 적 우리 모두가 같이 선을 보던 날 있었다.

농사가 정말 내게 맞는 것 같고 좋다는 신실한 청년과

특수학급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즐겁게 하는 선생.

좋은 조합이다.

모두가 유쾌했던 자리.


그림명상’.

내 영혼을 채우고 있는 것이 어떤 그림들인지

그건 어떤 느낌으로 있는지, 무슨 색깔인지.

(아, 결국 그림명상’에는 시간을 쓰지 못한 아쉬움...)


‘夜단법석’ 두 번째.

밤마실도 나갔다.

날 흐렸으나 간간이 별을 찾을 수도 있었고,

산마을을 채운 존재들의 인기척에도 귀기울였다.


새벽 2시 모두 잠자리로 가려는데,

밭에 나가 종일 있었던 장순샘, 먼저 잠자리로 갔더니 그때 깼다.

아, 그럼 다시 자리해야지.

이 밤이 아쉬워. 언제 또 이리 모이기 쉽겠는가.

다시 이어진 夜단법석.

새벽 4시 밭으로 다시 장순샘 가고,

그제야 잠시 눈 붙인 사람들.


낮이고 밤이고 사이사이 노래를 불렀다.

올 여름 엮은 노래집 <메아리>를 160 계자에 이어 어른 계자에서도 목청껏 부르고 있다. 

아카펠라 '군밤타령'도 퍽 흥겨웠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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