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10.달날. 흐림

조회 수 686 추천 수 0 2015.08.23 23:19:21


한동안 비운 달골에는 미니장미가 저 혼자 때늦게 피고,

세이지도 저 혼자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고,

부레옥잠이 한껏 통통해져 있었다.


천지의 운행은 언제나 탄복을 넘치게 신비롭다.

8일의 입추를 넘기며 ‘서서히 가는’ 계절의 속도와 달리 확 확 기온은 떨어졌다.

몹시 더워 이 산마을에도 내렸던 폭염경보의 일주일이 잦아든다.


계자 후속작업을 하는 주간의 시작일,

교무실부터  눈에 보이는 것들만 먼저 좀 치우고 교실로 돌아가야할 짐들을 옮겼다.

냉장고 정리는 하루를 더 미루고, 초파리가 날기 시작하는 포도들을 씻어 효소를 담았고,

한 주동안 읍내 기숙사에 있는 아이의 저녁밥을 실어나르기로 한 한 주의 첫날,

생각은 여기 있지 못하고 서울로 향했다.

지난 160 계자의 마지막 밤 아이 하나 다쳤다.

모두가 고래방으로 건너가고 있던 시간,

먼저 간 아이들이 저마다 놀고 있었는데, 혼자 빙글빙글 돌다 툭 넘어졌다.

다리가 꼬였던 듯.

자정 넘어 병원을 갔고, 종아리에 두 줄의 금이 가 반깁스를 했다.

다음 날, 그러니까 나가는 날 아침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고,

역으로 어머니가 오셨다. 무어라 드릴 말씀이 있었겠는가.

그리고 주말 동안 여러 차례 아이 아버지의 걱정의 말씀이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데리고 있는 죄일지니.

그런 거친 상황 한편에 어른 계자가 있었다.

당면하면 당면하는 대로 마주하기!

그렇게 주말이 갔다.

금이 갔다던 다리는 부러졌다 했고, 병원에서 상황을 보고 수술을 할 수도 있다 했단다.

어른 계자를 멈추고 바로 달려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친 아이도 다친 아이지만 다친 동생으로 마음 쓰고 있을 형아가 어떤가 걱정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친 것과 상관없이 형제가 재밌었다고, 또 가고 싶다’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160 계자 샘들 보시라로 시작하는,

안타까워하고 있는 160 계자 샘들한테 몇 자 보냈다.

아이 상황과 진행상황과 당부의 말, 위로, 그런.

샘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무거울 것인가. 애는 애대로 쓰고.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로 오는 건 아니다.

혹여 서로를 비난할까, 누가 잘했니 못했니 정녕 상처주지 말기를.

‘...

5. 다 잘 해결될 거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지 않더라도 벌어지는 상황을 기꺼이 안을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샘들한테 그 어떤 불이익도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학교의 수장으로 모든 건 내게 책임이 있고,

문제해결을 위해 부모님과 잘 의논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 했다.

샘들아, 오직 내 마음 자리 살피기, 내 마음 건사하기.

그게 물꼬를 돕는 것, 나아가 좋은 세상을 꾸리는 일일지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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