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떤 부름'

조회 수 2445 추천 수 0 2018.07.18 04:55:08


어떤 부름



늙은 어머니가

마루에 서서

밥 먹자, 하신다

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다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

원뢰(遠雷) 같은 부름

나는 기도를 올렸다,

모든 부름을 잃고 잊어도

이 하나는 저녁에 남겨달라고

옛 성 같은 어머니가

내딛는 소리로

밥 먹자, 하신다


(<먼 곳>(문태준/창비/2012) 가운데서)



밥 먹자 건네는 어머니의 음성이

오래되었으나 견고한, 먼 우레와도 같은 성주의 부름 같다.

성주를 위해 대원정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부름,

결코 거역할 수 없고, 우리를 존재케 하는 오직 복종해야 하는,

그러나 한없는 사랑으로 나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말 이의 부름.

나는 작고 연약한 푸른 벌레 한 마리,

어머니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로 다 기어가서 닿고 싶은,

어머니 말씀의 온기의 그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온 힘 다해서 이르고픈 밥상으로 가는.

나도 오늘 그 밥상 앞에 앉고 싶다.

울 엄마의 김 오르는 밥 한 술 뜨면 

가뿐하게 병상을 차고 저 햇살 아래로 걸어나갈 수 있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물꼬를 다녀간 박상규님의 10일간의 기록 [5] 박상규 2003-12-23 115367
238 푸히히~ 운듸~ 2002-06-13 855
237 반가워요 ^^ 배승아 2002-03-16 855
236 물꼬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수상 2002-01-31 855
235 한국의 만델라 르몽드 2009-08-25 854
234 한사골(한겨레를 사랑하는 시골사람들) 홈페지가.... 흰머리소년 2004-01-19 854
233 Re..여러모로 고마운... 2002-09-13 854
232 얼레리 꼴레리 상범샘 나이?? 정확도는 않이지만 40새래요.... 꼬시라니까!!! 신지소선 2002-06-12 854
231 제가여... [5] 미린데여^^ 2003-04-05 853
230 좀더 달라질 세상을 기대하며... [1] 최미경 2003-03-28 853
229 상범샘 딱걸렸어+_+ [1] 수진-_- 2003-03-27 853
228 알려주세요 [2] 민아맘 2003-03-18 853
227 수진입니다... 안양수진이 2002-04-01 853
226 참, 품앗이 일꾼 모임도 했습니다. 김희정 2002-03-05 853
225 확인 부탁드립니다. 강영선 2002-02-04 853
224 전은숙님, 고맙습니다! 물꼬 2010-02-15 852
223 그 섬에 가고 싶다 [1] 2009-09-27 852
222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3] 운지샘,ㅋ 2003-08-11 852
221 한꺼번에 왕창하는 답례 [1] 옥영경 2003-05-23 852
220 저... 주소가........ [1] ♡리린♡ 2003-05-16 852
219 살려줘.. [1] 김동환 2003-02-06 85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