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22.흙날. 흐림

조회 수 680 추천 수 0 2015.09.15 12:13:41

 

10학년 한 아이 와서 머물렀다.

종일 이웃의 고추밭에 들어가서 함께 일했다.

‘함께 일한다’는 것은 마주앉아 하는 말 넘치는 상담과는 분명 다른 질감을 가져다준다.

말에 집중한 것보다 더 깊이 자신이 가진 주제에 접근하게도 하는.

형식은 수다에 가까운데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주절거렸고,

때로 영어 낱말들에 얽힌 이야기도 하며 히히덕거렸다.

아이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영어를 좀 가르쳐 주어야겠다 낄낄거리기도.

맞춤하게 일하기 좋은 하늘이었네.

점심은 산마을에서 연 작은 음악회를 가서 먹었다.

40년 전통의 음악단은 마치 유랑극단, 실제 그 짜임새가 그러했던, 같은 유쾌함.

우리는 전승물처럼 노각과 가지와 토마토들을 실어왔다.

일하고 밭에서 얻어온 수확물의 풍성함이라.

 

면소재지에서 깊숙이 들어간 골짝 비니실 고추밭,

산 아래 800평 고추밭, 그 이어 우리 일한 고추밭이 있었다,

가 쪽을 빼고 도둑이 다 훑어갔다고 마을이 술렁였다.

“아는 사람일 거라!”

신고를 하면 오가느라 빼는 힘이 더 많을 거라고 아서라 아서라 하는 주인과

그래도 해야지, 그래야 또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지, 하며 신고를 권하는 이웃들과

망연히 바라만 보는 이들이 있었다.

가끔 산마을까지 오는 도둑의 걸음은 바깥세상의 살림을 대변하고는 하는 듯한.

먹고 살기 힘들어 그 고추를 따갈 수밖에 없었던가 그 밤손님은....

에고 어쩌나, 애써 키운 것들...

 

부엌곳간 냉장고를 드디어 비웠다.

비로소 여름 계자가 끝난 것이 되었네.

아직 부엌 안 냉장고는 정리가 필요하겠지만.

하기야 어쩜 한참을 하지 않아도 될 듯도.

160 계자 밥바라지 연주샘과 상미샘은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이름 다 붙여 냉장고를 정리해두었다.

떠나는 자리가 어때야하는지를 보여주고 가신 샘들.

이리만 한다면 계자를 열 번도 내리 더 할 수 있으리.

 

밤,

머문 이과 돌아온 이들과 달골 왁자한 밤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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