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더위가 그친다는.
풀도 더 이상 자라지 않아 벌초를 시작할 때.
이제 마지막 풀베기 혹은 풀매기 풀뽑기가 될 터.
포쇄도 이맘 때 하는 일이라, 책이며 옷가지며 볕에 말리는.
옛 어른들은 한지 책을 꺼내 포쇄하고
벌레를 막기 위해 창포 혹은 천궁과 함께 넣어 기름종이로 쌌더라지.
올 여름이 참 무겁게 가네.
계자 마지막 밤 대동놀이를 위해 간 고래방에서
놀이를 시작하기 전 혼자 돌다 넘어진 아이가 있었고,
한밤중에 간 병원에서는 뼈에 금이 갔다고 했고,
서울 집으로 돌아가 간 병원에서는 부러졌다 했다.
아이는 깁스를 하고 누웠고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다 하였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름 계자이다.
살다보면
그간의 선한 마음과 애씀은 어디로 가고 터무니없는 말 앞에 그만 주저앉을 때가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
여름 어디메쯤에서 받은 한 통의 전화가 아직 윙윙거린다.
한 아이가 집을 떠나 길 위에 있을 적 이곳에도 들렀는데,
마침 내내 미루던 사무적인 일로 그 댁에 전화를 넣었더랬다.
그런데, '애를 거기 보내놨을 때 우리에게 전화를 한 저의가 뭘까를 생각했다' 했을 때,
물론 말이란 게 앞뒤 맥락이 있는 속에 나왔겠지만,
그만 모든 끈이 놔졌다.
오해란 것이 이런 것이다.
저의라는 말이 갖는 불편함과 부정성이 주는 상(像)도 한 몫 했을 것.
아팠고, 아프다.
정녕 긴 여름이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 불가에서 들었던 말을 생각하노니.
살아가며 온갖 괴로움이 우리 앞에 놓이겠지만,
어느 집이고 곡소리 없었던 적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살아있기에 어쩔 수 없이 겪는 일,
하지만 그 슬픔과 분노와 화와 애끓음이 내 안에서 나를 다시 해치지 아니하도록 하라는.
여름은 길지만 가을은 올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