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25.불날. 비

조회 수 669 추천 수 0 2015.09.16 08:58:42

 

비 내렸고 바람 불기를 밤까지 했다.

학교아저씨는 읍내 나가 장도 돌아보고 가을무와 알타리무도 챙겨왔다.

 

베짱이 주간 이틀째.

서울 종로에서 제2회 사람사는세상 영화축제(8.24~28)가 있었다.

개막작으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침묵너머 시선> 상영.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독재 정권의 양민 대량학살(애국으로 위장되었던)을 다룬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의 연작쯤.

전작은 가해자가 찍은 자신의 과거, 이번 영화는 피해자가 찍은 가해자의 현재.

앞이 현란했다면, 이 영화는 고요했다.

 

영화는 가까이에서 잡은 한 남자, 대량학살로 목숨을 잃은 람리의 동생 아디,로 시작한다.

이어 아디가 보고 있는 비디오 클립이 이어진다,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이들이 그때의 상황을 증언하는.

우리는 감독의 의도이건 아니건 굳이 비디오를 보는 아디의 표정을 읽지 않아도 된다.

학살의 가해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과 대화하는 아디를 보며

우리가 그 아디의 표정이 되면 된다. 아니, 된다.

가해자들의 당당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하는 증언에

오히려 아디의 표정은 심드렁하게까지 보이는데

아귀가 맞지 않은 편집처럼 보이는 이 연결들이 오히려 정서적 효과를 키운다.

그것은 김기덕 영화 <섬>에서 난도질당하는 물고기와 다음 장면이

오히려 잔학상을 더 확대시키듯이 말이다.

고요가 소란함보다 더한 감정을 증폭시키듯.

공포, 경악, 분노가 거기 있다.

 

양민학살 뒤엔 식민지 지배를 일삼은 서구 열강이 있었을 터.

수하르토 정권이나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지원해준 세력 역시.

제국주의가 독재정권으로 이어진 것은 보편문법.

그리고, 우리에겐 광주와 제주의 역사가 있다...

영화가 끝난 무대에 오른 감독이 말했다.

“그 누구도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우리가 곧 과거이고 과거가 언젠가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고 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윌리엄 포크너가 ‘과거는 죽지도 않았고 지나가지도 않았다’고 말했듯; As William Faulkner once wrote, “The past isn´t dead and buried. In fact, it isn´t even past.”

오바마가 필라델피아 연설에서도 윌리엄 포크너를 인용했더랬지.

그런데, 조슈아는 어떻게 인도네시아 학살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오래된 일이다. 2001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여성 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한다고 해서 그 과정을 다큐로 만들기 위해 갔는데, 북수마트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불법 자경단체이자 극우단체를 고용하여 여성들을 공개적으로 협박하고 폭행했다. 그 세력들이 바로 1965년 대학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지금까지 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농장의 노동자들이 대개는 대학살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거나 당시의 생존자들이었다. 2003년에 내가 영화 촬영을 위해 인도네시아를 다시 찾았을 때 그들은 그사이에 이미 협박을 받아 영화 출연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때 그들이, 우리가 당신 영화에 출연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저 가해자들을 찍을 수는 있지 않겠느냐 했다.”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가 승자일 때 어떤 결과가 주어지는지를 보여준다면

<침묵의 시선>은 감독의 말대로 가해자가 아직까지 정권을 쥔 상태일 때

그 공포 속에서 침묵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영화.

“감당할 수도, 치료할 수도, 애도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대한 것이다.”

침묵에 관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관한 정적이고 압축적인 영화라고 감독은 말했다.

영화는 정말 그러했다.

그것은 침묵의 껍데기를 쓴 소용돌이였다.

감독은

다큐멘터리란 사람들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지니고 가장 좋은 질문과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했다.

그는 정말 중요한 질문을 열심히 했다.

그의 영화의 위대함이 바로 그것 아닐까 싶다.

 

아, 감독과 객석에서 사진도 하나 찍었더랬네.

나이 먹으니 그런 것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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