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26.물날. 구름 조금

조회 수 677 추천 수 0 2015.09.18 08:30:43

 

밭에 가을무씨를 뿌리다.

 

베짱이 주간 사흘째.

종로 서울극장은 제2회 사람사는세상 영화축제 중(8.24~28)

1948년 제주를 그린 오멸 감독의 <지슬>과 구자환 감독의 <Red Tomb; 빨갱이 무덤>과

독립영화 세 편 <더 스튜디오; The Studio>와 <클린 미: Clean Me><용건만 간단히> 보다.

숙제 같았던 <지슬>과 <레드 툼>이었다.

어젯밤 보았던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의 양민학살을 다룬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침묵의 시선>과

역시 궤를 같이 하는 작품들.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 희생된 양민이 100만 명 이상이라 했다.

좌우익 보복학살도 있었지만

대개 남한의 군경과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됐다.

전국적으로 23만에서 45만 명으로 추정되는 국민보도연맹사건도 대표적.

1960년에 이르러 국회의 '양민학살사건 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5.16 쿠데타로 조사 내용과 자료는 소각되고 유가족은 국보법으로 처벌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시했던 독재자의 딸을 이 나라는 대통령으로 뽑았다.

(문제는 그가 아버지랑 다른 사람인가 하는 점일 것.)

영화는 현재 보도연맹원 처형자들에 관한, 미약한, 발굴을 보여주지만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기념하는 5.18조차

당시 시청 앞의 즐비했던 관을 담았던 사진을 향해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홍어택배’로 조롱하는 사람이 있는 나라에서

우리가 무슨 말을 어이 담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사람으로서 갈수록 할 말이 없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나니.

 

영화가 끝나고 저녁에는 언젠가 물꼬를 담은 적이 있던 촬영감독님의 초대 있어

도곡동으로 가 당신 부모님이 하시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네.

자랑하실 만하더라.

 

<씨네샹떼>(강신주, 이상용/민음사, 2015)를 뒤적이다.

내 인생의 영화 다섯 손가락에 꼽힐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언젠가 왔던 기자 한 분은 십년도 훨씬 넘은 뒤 물꼬를 기억하기를

마을에서 달골을 올려다보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로 그 영화를 말하던

나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가방에서 친구의 공책이 나왔고,

친구가 숙제를 해서 퇴학을 맞지 않게끔 공책을 전해줘야 한다.

달골을 오를 때마다 지그재그로 오르던 아마드의 달음박질을 생각한다.

먼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

아마드가 종일 품고 다닌 네마자데의 공책에서 떨어지던 들꽃에

책임, 윤리, 우정, 연대를 담았던 그 영화가 우리에게 준 충격은 얼마나 컸던가.(1991년?)

국가로부터 타살된 한 친구를 보내는 서울 거리에 아직 화염병이 뒹굴고 있었던 해였다.

‘세계가 품고 있는 진정한 고통은 기아나 전쟁처럼 큰 사건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 감동은 어디서 왔나. 우정에서!

그런데 우정이란 무엇인가?

 

‘친구들과 놀이를 즐기는 것이 우정은 아니다. 다시 말해 우정은 쾌락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키아로스타미의 탁월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정’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불쾌함을 기꺼이 감당하는 자세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 아마드가 네마자데의 예상되는 불행과 고초, 그리고 슬픔이 안겨 주는 불쾌함을 감당하려 한다. 돌아보라. 지그재그로 올라가야만 하는 언덕빼기를 넘어 올리브 숲을 지나, 그리고 가파른 마을 도처를 헤매며 친구의 집을 찾으려는 그 가상한 노력을. 그리고 친구의 집을 찾지 못하자 식음을 전폐하며 친구의 숙제마저 기꺼이 감당하려는 그 성숙한 자세를.

... 우정은 타인에 대한 완전히 자발적인 희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강신주

 

이상용은 이렇게 이어가고 있었다.

‘인간은 지그재그로 난 고난의 길을 넘어서 비로소 ‘타인(친구)’에게 이를 수 있다. 지그재그는 고난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며, 이 길을 통과하는 자만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학교 장면에서 출발한 <내 친구의 ->는 길을 통과하는 여정을 통해 진정으로 교육을 다루는 영화가 된다. 교육은 정해진 숙제를 반복적으로 베끼는 학습법이나 훈육방식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란 직접 ‘경험’하는 것이며, 경험의 충돌은 낯선 것들을 통해 부딪친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결단이 필요하다... 지그재그 길이 고난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결단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올바름은 실천하는 행위의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 준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어른들의 말에 저항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말은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세계와 모순된 존재로 남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모순이 없다. 올바른 것이기에 행동한다. 여기에는 이데올로기가 없으며, 실익의 따지는 행위도 없다. 비록 아마드는 어른들 앞에서 우물쭈물하며 말하지만 행동만큼은 확신에 차 있고 과감하다. 행동이야말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이 영화는 교육 과정이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수동적인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책임지는 행위 속에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책임은 끝내 아름다운 우정을 만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974 2013. 8.30.쇠날. 갬 옥영경 2013-09-16 694
1973 2016. 6.27.달날. 맑음 옥영경 2016-07-21 693
1972 2016. 4.29.쇠날. 맑음 옥영경 2016-05-11 693
1971 2015.11. 4.물날. 맑음 옥영경 2015-11-23 693
1970 2015. 8.15~16.흙~해날. 맑았던 하늘이 흐려가다 옥영경 2015-09-03 693
1969 2015 어른 계자 여는 날, 2015. 8. 7.쇠날. 맑음, 그리고 밤 비 옥영경 2015-08-23 693
1968 2015. 6.26.쇠날. 비 / 6월 빈들 여는 날 옥영경 2015-07-24 693
1967 2015. 4. 3.쇠날. 비 내리다 갬 옥영경 2015-04-29 693
1966 2015. 3.23.달날. 맑음 옥영경 2015-04-24 693
1965 2015. 3.13.쇠날. 비 옥영경 2015-04-16 693
1964 2015. 2.18.물날. 싸락눈 옥영경 2015-03-13 693
1963 2014.12.31.흙날. 눈 옥영경 2015-01-06 693
1962 2014.12.26.쇠날. 맑음 옥영경 2015-01-04 693
1961 2014. 8.19.불날. 비 옥영경 2014-09-20 693
1960 2014. 3.12.물날. 비 옥영경 2014-04-05 693
1959 2013. 6.27.나무날. 조금씩 무거워지던 하늘, 그리고 빗방울 몇 옥영경 2013-07-20 693
1958 2019. 5.31.쇠날. 맑음 / 연어의 날(6.22~23) 밑돌모임 옥영경 2019-08-02 692
1957 2019. 5.13.달날. 맑음 옥영경 2019-07-19 692
1956 2015.12. 5~6.흙~해날. 흐림 옥영경 2015-12-24 692
1955 2015.12. 2~3.물~나무날. 비, 그리고 눈 옥영경 2015-12-24 69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