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29.흙날. 맑음

조회 수 705 추천 수 0 2015.09.26 08:34:56


 

대해리의 두더지들은 쉬지 않고 밭에다 구멍을 내고 다녔고,

물꼬에서는 베짱이주간 엿새를 보냈다.

계자 끝에 딸려온 후속 작업이 없었던 건 아니나

당면한 일은 당면하면 될 것이라.

 

글께나 쓰는 작가의 표절이 또 불거졌다.

십년도 더 전 그가 한 해 두 편이나 장편을 들고, 그것도 이름난 문학상을 내리 타며,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걸출한 작가의 탄생으로 즐거웠다.

한국 프로야구의 만년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를 모티브로

경쟁과 죽음으로 내모는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풍자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충분히 재밌었고, 글동네를 기웃거리는 이에겐 부러움을 받기 충분했다.

물론 당시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은

‘거꾸로 읽는 야구사’ 게시판에서 베껴 썼다는 말들도 하였으나

그건 기록이고 이건 소설이었으니까 그러려니.

그런데, 정말 베꼈더라.

 

지난여름은 시작부터 소란했다.

가뭄과 전염병이 수그러들자 문학판이 한 작가의 표절로 시끄러움을 이었다.

그의 초창기 작품은 집 뒤의 우물처럼 깊게 읽었으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춘기적 감수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아가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지 못하는 지리함으로

왜 대중들이 그토록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툴툴거리게 했던 작가.

그런데, 정작 표절 문제가 붉어지자 아무 말도 보탤 수가 없었다.

그럴 때 나서서 덩달아 말을 더하는 게 비겁하다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뭔가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해서.

나 역시 놓치지 않으려고 끼적거려 놓은 글과 어디서 좋은 구절을 옮겨놓은 것이 구분 없어

때로 어느 게 내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지적재산권에 민감하지 않은 시절이어서도 그랬으리라.

더구나 나는 리눅스 지지자로 카피라이트가 아니라 copyleft 카피레프트; 저작권 공유주의자.

그렇다고 남이 애쓴 걸 도둑질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말은 아닌.

다만 독점에 반대한다 뭐 그런.

어쨌든 어느 때 썼던 시 한 편은

아, 글쎄 한 소설에서 옮겨놓은 몇 구절을 줄줄이 있었던 적도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표절이었던 거지.

한참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는데,

변명이라고 하자면 그런 것이 민감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을 터.

다행히 글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이 아님을 고맙게 여기며,

뭐 그런 내 전적도 있었으므로 돌을 던질 수 더욱 없었지.

반면 내 글을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책에서 발견한 적도 있다.

많지 않은 회원들만 보는 소식지에 단편동화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서점에서 버젓이 다른 작가의 이름으로 그 작품이 활자화 된 걸 보았다.

똑같은 제목에 내용까지 너무나 흡사해 깜짝 놀랐지만

비슷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고 지났는데,

이즈음에 이르니 혹 표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드는 거라.

헌데 미시마 유키오 <우국>을 표절했다는 신경숙의 <전설>은

글의 전체 개념, 얼거리, 주제, 구성이 아닌 그저 서사표현 몇 줄이더라.

그를 두둔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으나 그런 극심한 뭇매는 좀 아니지 않은가 싶다.

적어도 그가 누구보다 열심히 쓰고 읽었던 성실한 작가였음을 부인하지 말아야.

그의 자리가 그냥 얻어진 게 결코 아니다.

 

그런데, 표절이 널리고 널린 한국 문학판에서 사람들은 왜 유독 그의 글에만 민감했을까?

그만큼 대중적이어서?

한 때 한 유명가수의 학력논란처럼 혹 집단적 광기는 아니었는가,

뭔가 분출이 필요한 대중의.

아니면 혹 만만한, 구로공단 여공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 때문은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에 휘말렸던 그때 시골 노인인 울 어머니,

상고출신에 보잘것없는 집안이라고 검사고 권력 있는 자들이고

만만하게 봐서 그런 거라 안타까워하셨던 얼굴이 겹쳐졌다.

말하자면 만만한 작가를 건드린 게 아닌가 말이다,

비겁하게 힘없는, 계파도 아닌.

너도 알고 나도 알듯이 문학계를 끌고 있는 창비 문지 문동 세 잡지는

서울대 국문과 파벌에 따라 갈려있다.

문제제기자들이 서울대 국문과가 만든 계파에 정통으로 총을 들이댈 수는 있을 것인가...

 

파주의 명필름아트센터에서 '명필름 전작전: 스무 살의 기억' 중.

창립 이후 20여 년 동안의 36개 전 작품을 두어 달 동안 다 만날 수 있다.

오늘은 정성일 평론가가 김기덕의 <섬> 상영 뒤 짧은 강연.

김기덕에 대한 평론을 가장 많이 쓰고 가장 잘 이해하는(?) 그이다.

‘신기하리만큼 사회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김기덕의 영화.

그의 영화는 줄기차게 버림받거나 모욕당하거나 무시되었다,

그나마도 어쩌다 상을 받고 잠시 영화랑 거리가 먼 사람들로부터 연예인에 대한 관심처럼기웃거려진 걸 빼면.

사람들은 김기덕의 영화를 잘 말하지 않아왔고

그만큼 영화적으로 제대로 평가된 적이 없다.

그의 영화를 말하는 대신 영화를 만든 감독의 정신 상태를 이야기했다, 영화평론가조차.

김기덕의 영화는 공간 대한 영화라 했고 <섬>은 그 대표적.

섬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가 꾸는 꿈이라고 정성일은 읽었다.

김기덕은 ‘영화감독’이고 정성일은 ‘평론가’, 틀림없는 평론가라는 생각을 했다.

정성일은 여전히 소름끼치게 평론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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